(홍콩=연합뉴스) 정주호 특파원 =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의 최대 경쟁세력인 상하이방(幇)에 미묘한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장쩌민(江澤民) 전 주석의 핵심 참모이자 상하이방의 상징적 인물로 후 주석과 원자바오(溫家寶) 총리의 집중 견제를 받아온 천량위(陳良宇) 상하이 당서기가 변화의 주인공이다.
천 서기는 지난 1월부터 언행을 각별히 삼가면서 공개연설을 할 때마다 반드시 '후진타오를 총서기로 하는 당 중앙'을 거론하며 후 주석 옹호세력으로 돌변했다. 이는 장쩌민의 '3개대표론'을 내세웠던 종전의 연설과는 완전히 달라진 모습이다.
지난달 하순 "후 주석의 요구에 따라 전체 국면을 고려하는 사고를 견고하게 갖추겠다"고 밝혔던 천 서기는 특히 지방중에선 처음으로 후 주석이 천명한 '사회주의 영욕관(榮辱觀)'에 대한 집단학습을 주도하기도 했다.
천 서기는 지난 4일 상하이 당위원회 토론회에서 "후 총서기의 사회주의 영욕관은 중국 경제.사회발전의 전체 국면에 착안, 중화민족의 미래와 전 공산당, 전국 인민을 향해 중대한 이론적 명제와 행동지침을 밝힌 것"이라며 "시의성과 민족성, 지도성, 실천성을 겸비한 이론"이라고 극찬했다.
그는 지난 1개월 사이 9차례에 걸친 공개활동에서 후 주석의 입장을 옹호하는 발언을 빼놓지 않고 있으며 시 간부들에게도 대국적 통찰력을 갖춰 '중앙의 하달 요청에 맞춰 사상을 통일'하도록 요구하기도 했다.
장쩌민은 퇴임 후 상하이를 본거지로 삼아 권력을 놓지 않은채 후 주석의 견제에 항거해왔고 천 서기는 공개 석상에서 원 총리를 향해 탁자를 손바닥으로 내려칠 정도로 중앙 정부에 반기를 든 '지방제후'의 대표적 인물로 꼽혀왔다.
상하이 제압 여부가 후-원 권력의 공고화 여부를 가늠하는 지표의 하나로 여겨져온 만큼 천 서기의 태도 돌변은 중국 최고권력의 변화와 관련해 주목할 만하다는 것이 관측통들의 지적이다.
천 서기의 입장 변화는 황쥐(黃菊) 부총리의 와병 및 인사조정 움직임과 관련이있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상하이방의 주요인물이자 천 서기와 각별한 사이인 황 부총리가 암 투병으로 집무를 하지 못하게 되자 천 서기가 중앙에 기댈 큰 언덕이 사라지게 된 것이다.
특히 내년 가을 제17기 전국대표대회를 앞두고 조기에 인사조정 움직임이 시작되면서 천 서기가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승진은 물론이고 자신의 직위도 온전하게 보장받지 못할 수 있다는 판단을 내렸을 것이라는 추정이다.
후 주석은 지난해 여러 차례 천 서기를 교체하려 했으나 상하이방의 강력한 저항으로 이를 성사시키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라 계속된 압력과 견제를 견디지 못한 천 서기가 후-원 세력과 타협하는 길을 택했을 가능성이 크다.
후 주석은 지난달 상하이 전인대 대표단을 만나 흔들림 없는 개혁 추진을 강조하면서 상하이가 경제성장방식 전환, 자주적 창조능력 제고, 선진 개혁.개방, 사회주의 조화사회 건설에 앞장서 달라는 '4개솔선(四個率先)' 지침을 전달하기도 했다.
후 주석이 상하이의 경제적 역량을 기초로 삼아 새로운 개혁.개방조치를 취해 나가고 상하이를 각 지방의 발전모델로 삼을 것이라는 추론도 나오고 있다.
후 주석이 장 전 주석의 최고 측근이었던 쩡칭훙(曾慶紅) 국가부주석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인 뒤 갖가지 압력으로 천 서기마저 굴복시킴으로써 서서히 권력을 장악해나가고 있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