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6년 차, 이제야 남편을 이해하기로 했다. TV를 볼 때면 소소한 말다툼이 시작되는 우리 부부. 항상 주범을 남편으로 몰아세웠던 지난 날들을 반성해 본다. 스포츠 중계나 뉴스를 볼 때면 놀랍게 살아나는 남편의 집중력, 옆에서 무슨 얘기를 해도 듣는 시늉도 안한다. 심지어 딸아이가 물을 쏟아도 못 본 척이다. 그런데 며칠 전 깨달았다. 남편은 내 얘기를 정말 못 들었고, 쏟은 물을 진정 보지 못했던 것이다.
얼마전에 본 ‘아이의 사생활’이라는 다큐멘터리는 나에게 작은 일깨움을 줬다. 남자아이와 여자아이의 성(性)차를 실험을 통해 다루고 있다. 그 프로그램에서는 여자아이들은 공감하는 능력이, 남자아이들은 체계화하는 능력이 뛰어나다고 말하고 실험을 통해 이를 증명해 보인다.
엄마와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돌이 갓 지난 아이, 엄마는 장난감 망치에 손이 다쳐 아파하고 우는 모습을 연기한다. 이때 여자아이들은 마치 자기가 상처를 입힌 것처럼 엄마의 표정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울먹인다. 반면, 남자아이들은 잠깐 변화를 보이지만 이내 자기가 놀던 장난감에 다시 몰입한다. 남녀쌍둥이에게 똑같은 실험을 해도 결과는 같다. 속으론 “저러니 아들자식 키워봐야” 했지만, 아이들을 대하는 양육태도에 부모의 이런 생각이 반영될 수 있다는 생각에 섬짓해졌다.
또 여자들은 동시에 여러 가지 일을 잘 하지만 남자아이들은 대체로 한번에 하나씩 처리한다는 것도 몇가지 실험을 통해 보여준다. 그 중 남녀초등학생들에게 헤드폰을 씌운 후 양쪽 귀에 동시에 다른 단어가 들리게 한 다음 그 두 단어를 알아맞추게 한다. 역시 남자아이들은 두 단어 중 하나를 말하거나 한 단어도 제대로 못해서 두 낱말이 뒤섞인 이상한 단어를 대기도 한다. 이에 반해 여자아이들은 대부분 또박또박 두 단어를 정확히 집어 낸다. 여자아이들 반응은 ‘쉽다, 당연하다’는 것인데, 남자아이들은 ‘이걸 어떻게 맞추냐’는 식이다. 정말 놀라운 차이다. 이 차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넌 왜 이렇게 집중을 못하니?”라며 딸아이를 나무랐을 것이고, “넌 왜 이렇게 단순하니?”하며 아들을 답답해했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남녀의 성차에 대한 얘기는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심리학 영역에서는 이미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 시리즈로 남녀의 차이에 대해 밝혀 놓았고 <말을 듣지 않는 남자, 지도를 읽지 못하는 여자> 등을 통해 대중서로 출간되기도 했다. 이 책들에서 지적한대로 차이를 인정하면서도 현실에서 남녀사이에 부딪치는 갈등은 어쩔 수 없는 부분이 많았다. 그저 흥미롭게 대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이 다큐멘터리는 ‘남녀의 성차를 아들과 딸 양육에 어떻게 적용해야 할 것인가’라는 쉽지 않은 숙제를 던진다. 프로그램이 끝날 때까지 명쾌한 교육적 대안을 찾지 못했지만 과학적 차이는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해줬다. 차이를 이해하고 나니 적어도 이를 존중하는 적합한 방식으로 교육해야 한다는 것 정도는 배운 것 같다. 또 여성의 뇌를 갖고 있는 남자가 17%, 남성의 뇌를 갖고 있는 여자가 17% 정도 된다고 하니, 생물학적인 성별에 의한 차이보다 우리 아이가 어느 성의 뇌를 갖고 있느냐에도 관심을 갖게 만들었다.
위대한 천재들의 상당부분이 양성성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우리 아이가 갖고 있는 성의 특징을 계발하는 것과 함께 상대성의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평소 불만이었던 남편의 단순함이 왕성한 남성성의 집중력(?)으로 받아들여졌듯, 간섭하기 좋아하는 수다쟁이 우리 딸아이의 지나친 여성성 또한 존중해야 할 것 같다.
▷장연우(cadmel@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