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침에 아이가 학교에 갈 때면 잘 다녀오라는 인사를 하려고 현관문을 열고서 아이와 같이 엘리베이터를 기다렸었다.
엄마에 대한 애교로 ‘잘 다녀오겠다’는 인사로 엄마를 꼭 안아주기도 하더니만, 언젠가부터 아이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주위의 시선을 의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지인들 말에 따르면 ‘아이가 커가고 있다는 것’. 윗층이나 아랫층에 사는 친구나 누나들에게 자기 엄마의 아침에 다듬지 않은, 단정치 못한 모습을 보이는 게 부끄러워진 것이다. 엘리베이터가 내려오기 시작하면, 머뭇머뭇하는 나에게 얼른 들어가라는 손짓을 하기가 일쑤고, 어떨 땐 맘이 급하면 먼저 문을 쾅 닫아 버린다.
‘이 버르장머리 없는 녀석 같으니라고…. 학교 갔다 오면 어디 두고 보자. 엄마가 창피하다 이거지?’ 순간, 괘씸한 생각이 든다. 새벽에 일어나서 따뜻한 밥 차려준 사람이 누군데? 엄마의 초라한 모습이 남에게 보이는 게, 들키는 게 싫다는 거잖아?
지난 일요일엔 동방녹주에서 축구시합이 있다 해서 00마트 앞에서 차량을 타게 되었다. 아빠도 오랜만에 시간이 나고 해서 같이 승차 하는 곳까지 가보자 했다. 이 녀석, 또 그런다.
두 사람 중 한 사람만 따라오면 되지 왜 창피하게 둘이 다 오냐고? “왜? 우리도 뭘 타고 가는지, 어떤 친구들이 가는지? 언제쯤 집에 오게 될지? 선생님한테 여쭤볼라 그런다.” 이 말에 나를 한쪽으로 데려가더니, 두 팔을 뻗어가며 아빤 배가 너무 많이 나왔다는 제스처를 하면서 엄마 혼자 따라가면 안되느냐고 되묻는다.
그러나 결국 난 애 아빠를 동반한 채, 배웅을 나갔다. 버스 맨 뒤쪽에 자리를 잡고 앉아선, 다른 사람 누군가 라도 볼까 얼른, 살짝 손만 들어 인사한다. 그리곤 그냥 아는 사람일 뿐이라는 듯한 표정으로 멀뚱멀뚱 쳐다 만 볼뿐이다. 아빠는 눈치채고 일찌감치 멀리 떨어져 있고.
학교에 막 들어 갔을 때, 놀이터에서의 아이들의 화제거리가 문득 생각난다. 친구들과 놀다가 엄마, 아빠 얘기가 나오면 자기들끼리 서로 엄마, 아빠 나이 자랑을 많이 했었다. 그때만 해도 나이가 많은 사람이 힘센 사람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이 아이를 좀 늦은 나이에 낳았기에 다른 친구들 부모들에 비하면 우리가 나이가 좀 있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그땐 어이없게도 엄마, 아빠가 친구들의 부모님들보다 나이가 많은 게 자랑거리였었는데 이젠 이 녀석이 커가면서, 친구들의 젊은 엄마, 아빠가 정말 부러워진건가? 아님, 이제 진짜로 사춘기로 접어들려고 하는 건가?
주위에선 위안의 말을 해준다. 엄마, 아빠가 다른 이들보다 나이가 더 들어서 그런 것 만은 아니라고. 아이가 커가는 자연스러운 모습이라고. 아직도 집에서 하는 행동은 나에겐 애기나 다름없건만, 그래서 밖에서의 서운한 행동도 용서가 되고 있건만, 이 아인 그 동안, 날마다 날마다 조금씩 조금씩 커가고 있나 보다.
'엄마만을 찾고, 엄마한테 기대려고 하는 애도 문제야, 지극히 정상적으로 커가고 있구만!' 이 말이 상당한 위로가 된다. 그래도 우리의 이 아이에 대한 사랑이 변함없듯, 이 아이의 엄마, 아빠에 대한 사랑하는 맘도 여전하리라 생각하고 싶다.
▷아침햇살(sha_bead@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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