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투데이]
헤드헌터인 그레이스 리는 중국 명문대학에서 리쿠르팅을 거쳐 한 미국계 과학서비스 회사에 500명의 후보자 명단을 거넸다. 올해 개설하는 연구개발(R&D)센터 인력을 150명 뽑으려던 이 회사는 100명을 추려내서 합격시켰다. 그러나 실제로 70여명만이 입사했다.
이유는 30여명이 다른 회사에서도 채용통보를 받았기 때문이다. 리와 같은 헤드헌터들에게 이같은 경쟁은 지금 일상이 됐다. 중국의 경제성장 속도가 각 분야의 전문가와 관리자들의 공급 속도를 앞지르고 있기 때문이다.
24일(현지시간) 인터내셔널헤럴드트리뷴(IHT)에 따르면 이같은 고급인력난으로 인해 사업 확장 및 합작사 설립을 위해 지난해 600억 달러 이상을 중국에 투자했던 다국적기업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리는 "채용통보를 했다고 해서 입사를 한다고 볼 수는 없다"며 "구인난은 매우 큰 문제가 되고 있다"고 전했다. 이같은 실정은 외국계 기업뿐만 아니라 이들 기업에 맞서 경쟁하는 중국 기업들에게도 크나큰 도전이 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값싼 노동력의 부족이 중국의 제조업을 위협하는 반면 고급 대졸 인력의 부족은 고부가가치 제품과 서비스를 생산해야 하는 단계로 나아가려는 중국의 장기 계획에 차질을 빚게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중국의 고급 인력 부족 문제에 관한 보고서를 냈던 맥킨지 상하이 사무소의 앤드류 그랜트 매니징 디렉터는 "아직 경고등이 울리고 있지는 않지만 중국이 이를 방치할 경우 문제는 더욱 심각해 질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중국은 한해 300만명 이상의 대졸자가 쏟아지고 있지만 기업들은 이들이 즉시 일을 하는데 필요한 경험과 기술이 부족하다고 불평하고 있다. 베이징의 비영립 사업 교육 그룹인 주니어 어치브먼트 인터내셔널의 가오 양 이사는 "수의 문제가 아니라 질의 문제"라고 강조한다.
맥킨지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 대졸자 중 기술 또는 전문 분야에서 외국계 다국적 기업에 적합한 인력은 10% 미만에 불과하다.
예컨대 160만명의 공대 졸업생이 있지만 프로젝트를 수행하거나 팀의 일원으로 일한 경험은 거의 없어 실제 써먹을 수 있는 인력은 16만여명 정도다. 이는 실무보다 이론을 강조하는 중국의 교육체제 때문으로 지적된다.
영어구사능력과 커뮤니케이션 스킬이 떨어지는 것 역시 다국적기업이나 합작사에서 일하고자하는 중국 대학생들에게 가장 심각한 장벽 중의 하나가 되고 있다.
개별 산업분야에서 전문성을 갖춘 이들도 별로 없다. 이스라엘 농업기업인 하제라 제네틱스의 경우 중국 매출 급증으로 농업 전문가를 고용하기 위해 전쟁을 벌여야 했다. 회사측은 마케팅 인력은 많지만 농경제학에 대한 배경지식과 경험을 가진 인력 찾기가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중국에서 가장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석탄산업 역시 인재 품귀 현상을 빚고 있다. 1만명의 석탄관련 전공자 중 단지 800명이 석탄산업에서 일자리를 찾았다. 기업에서 요구하는 수준의 인력이 그만큼 없었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13억 인구에도 불구하고 인적 자원의 역설적인 희소성은 중국이 발전을 지속하기 위한 심각한 장애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맥킨지의 그랜트는 "세계와 경쟁할 수 있는 인재 부족이 앞으로 가장 큰 문제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일부 다국적기업들은 인재를 두고 경쟁이 심화되면서 채용전략을 바꾸고 있다. 광고회사인 오길비&마더는 급속히 사업을 확대하면서 중국내에서 인력을 구하겠다고 결정했지만 광고시장이 40% 확대되면서 중국내 인력풀이 빈약해 해외에서 데려오고 있다.
오길비의 베이징 매니징 디렉터인 크리스 레이터먼은 "중국에서 필요한 인재를 찾을 수 없어 해외에서 많은 인력들을 끌어 들어야 한다"며 "중국내 시니어급의 고급인력은 다이아몬드처럼 귀중한 존재들"이라고 말했다.
오길비 뿐만이 아니라 다른 다국적기업들도 해외에서 인력들을 뽑아 들이고 있다. 중국의 공식 통계에 따르면 불법체류자를 제외하고 중국에서 적법하게 고용된 인력들은 2003년 이래 두 배 이상 늘어난 15만명에 이른다.
기업들이 당면한 또다른 문제는 중국인 고급인력들이 몸값이 천정부지로 뛰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광고 미디어 업계에서는 경력이 일천한 중국인 프로페셔널들도 직장을 옮기면서 임금을 크게 올려 받을 수 있다.
10-20%의 임금 인상에 사람들이 직장을 바꾸지 않으므로 기업들은 대략 100% 또는 그 이상을 올려서 제시하므로 임금이 급격히 뛰고 있다는 지적이다. 심지어는 홍콩이나 대만에서 같은 이을 하는 이들에 비해 더 많은 임금을 받는 단계에 와 있다는 것.
고급 인력 공급에 대한 점증하는 압력에 따라 중국 정부는 교육시스템 향상에 우선권을 두고 있다. 중국은 5개년 계획의 일환으로 오는 2010년까지 교육 지출을 현재의 두 배인 6%로 확대할 방침이다.
비판론자들은 그러나 중국의 보수적인 교육시스템이 교과서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기존 관점을 따르도록 요구하고 있다며 이는 중국의 엄격한 정치적 통제와 결합돼 기업들에 필요한 창의적인 인재를 질식시키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에 따라 시장경제에 부합하는 교유과정의 급진적인 변화가 요구된다고 지적한다. 일부에서는 교육개혁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국내외 기업 모두 직원 훈련을 위해 더 많은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맥킨지의 그랜트는 "중국은 졸업생수의 확대가 아니라 질에 집중해야 한다"며 "다듬어지지 않은 인력은 많지만 이같은 인재를 개발하는 방식은 세계적 수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