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여름 기러기들’드디어, 이번 주말이면 아내랑 아이들이 상하이로 돌아온다. 기쁘다. 대부분의 주재원 자녀들이 그러하듯이 우리 아이들도 여름방학을 하자마자 한국에 들어가서는, 개학하기 직전에 상하이로 돌아 온다. 아내도 아이들 뒷바라지 한다고 한국에 들어갔다가 함께 돌아온다. 자녀들 여름 방학 기간 동안에 나와 같은 처지에 있는 분들을 통칭하여 ‘여름 기러기들’ 내지는 ‘여름 총각들’이라고 부르는 것 같다.
다른 분들도 사정이 비슷한지 모르겠는데, 내 경우에는 아내가 없으면 딱 3일 정도만 좋은 것 같다. 일단 잔소리를 하는 사람이 없다. 쉬는 날 하루 종일 쇼파에 누워 있어도 누가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다. 주말에 골프 치러 나가는데 눈치 주는 사람도 없다. 술 먹고 늦게 들어간다고 해서 뭐라고 하는 사람도 없다. 혼자 조용히 책 읽고 있는데 아이들이 놀아 달라 숙제 봐 달라 귀찮게 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정말 신기한 것은 이 좋은 느낌이 3일 이상 가지를 않는다는 것이다. 아침에 밥을 해 주는 사람이 없으니 혼자 해 먹는다. 혼자 밥을 먹으니 밥맛이 없다. 술먹고 들어간 다음날 아침 북어국이나 김치국 끓여주는 사람도 없으니 오전 내내 속이 안 좋다. 시간이 지날수록 아침밥 먹는 횟수가 줄어들다가 아예 먹지 않게 된다. 아내가 냉장고에 쌓아 놓고 간 음식들은 건드리지도 않아 못 먹게 된다. 주말에는 잔소리를 하는 사람이 없으니 몸이 더 늘어진다. 특히나 올해는 40도가 넘는 고온 탓에 주말에 꼼짝도 하기 싫다. 혼자 있는 동안 매일 수영장을 다녀서 멋진 몸매를 만들어야겠다는 계획은 올해도 역시 계획으로만 끝난다. 혼자 있다고 책을 더 많이 읽는 것도 아니다. 저녁 때 불 꺼진 집에 들어가면 기분이 썩 좋지 않다. 아빠~하고 달려 나와 안기던 아이들이 없으니 사는 맛이 없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처음 몇 번은 여름 기러기들끼리 저녁 때 만나기도 한다. 주말에 초청을 해서 남자들끼리 밥을 해 먹는 사람도 있다. 한 번은 해 볼만 할 지 모르지만 이내 재미가 없어져 금방 시들해지고 만다. 여름 기러기들끼리 저녁 때 만나봤자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결국 술만 많이 먹게 된다. 같이 술 먹다가 갑자기 애들 보고 싶다고 우는 사람도 봤다. 아무튼 날 포함해서 여름 기러기들 참 불쌍하다.
2. 애들도, 아내들도 힘들고아이들이 방학 때 한국에 가는 이유는 간단하다. 학원을 다니고 다양한 체험을 하기 위해서다. 대치동, 목동, 중계동 등지에는 해외에서 생활하다 방학 때만 들어오는 아이들을 위한 전문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학원들이 많다. 고등학생들을 위해서는 학원뿐만 아니라 학원 근처 오피스텔도 성업을 이룰 정도다. 요즘은 엄마들도 아이들 학원 돌리는데(?) 방해 된다고 친정이나 친척집보다는 아예 방을 따로 잡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단순히 학원만 다니는 것이 아니다. 방학 때 할 수 있는 체험 프로그램도 한국에는 너무 잘 조직되어 있고 다양하다. 주말에는 아이들 데리고 체험 학습 프로그램 다느니라 아이들이 놀 시간은 거의 없어 보인다. 엄마들은 아이들 학원 실어 나르랴 체험 학습 프로그램 따라 다니랴 정신이 없다. 상해에서 보다 더 바쁘단다.
어떤 분야던지 약 3조원 정도의 돈이 그 분야에서 돌면 시장이 형성되었다고 평가한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사교육 시장이 얼마인 줄 혹시 아시는가? 무려 35조원 규모다. 이미 어마어마한 산업이 되었다. 관련 종사자, 즉 이 산업에 붙어서 먹고 사는 사람들만도 어마어마한 숫자가 된 것이다. 아무리 미국, 영국, 프랑스 등에서 좋은 교재가 나오고 좋은 프로그램이 나와도 한국의 사교육 시장을 거치면 더 훌륭한 명품 교재와 명품 프로그램으로 바뀐다고 한다. 단기간에 토익, 토플, SAT 점수를 높이는데 있어서는 전세계 어느 교육기구도 강남의 학원을 따라가지 못한다고 한다. 그 만큼 가르치는 노하우가 발달되어 있다는 얘기다. 학원에서는 아이의 전체 스케쥴 관리, 컨설팅 및 멘토링 역할까지 해 주고 있다고 한다. 학교에서 해 주지 않거나 못하는 많은 것들을 학원에서 해 준다. 언론에서 사교육에 대해서 아무리 뭐라고 해도—슬픈 현실이지만--많은 학부모들이 학원에 몰리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생각해 보시라, 미국 유학간 고등학생이, 미국 대학입학시험인 SAT 공부를 위해 방학 때 한국에 들어와 한국의 SAT 학원을 다닌다는 것이, 얼마나 역설적인 상황인지를.
나 어릴 적 초등학교 다닐 때, 여름 방학이면 아침 먹고 동네 앞 한내 개울에 아이들이랑 같이 몰려 나가 하루 종일 수영을 하고 놀다가는 저녁 먹을 때나 들어오고, 잠자리채 만들어서 곤충 채집한다고 하루 종일 동네 이곳 저곳을 뛰어다니던 때와 비교해 보면, 요즘 아이들이 너무 불쌍하고, 그런 아이들이 불쌍한 것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그 판에 아이들을 몰아 넣을 수 밖에 없는 엄마들도 역시 불쌍하다.
3. 뾰족한 대책은 없는 것 같고방학 후 한 달쯤 지나자 전화로 아내가 이런 말을 한다. “여보, 이번에 상하이로 돌아가면, 아이들의 교육에 대해서 당신이랑 심도 있게 의논을 해 봐야겠어요. 여기 와서 학원을 돌려 보니 이건 아닌 것 같애. 아이를 잡는 수준을 넘어서 완전히 전쟁이야 전쟁! 초등학생을 상대로 미국 대학원 유학 갈 때나 사용되는 영어 단어들을 매일같이 시험 보인다는 게 정상이 아닌 것 같애. 이 판에 계속 휩쓸려야 하는지 모르겠어”
어제는 큰 아들 원우랑 통화를 하는데 생전 아빠한테 힘들다는 말을 안 하는 원우가 이런 말을 했다. “아빠, 학원 다니느라 조금 힘들어요.” “ 바이올린이랑 영어 GRAMMAR수업은 재미있는데 나머지는 재미가 없어요” “저 아빠 얼굴 잊어버렸어요. 생각이 잘 안나요~”
그 말 듣고 얼마나 마음이 아프던지…
이번에 아이들 상하이로 돌아오고 나면 여름 방학 동안 고생했다고 따듯하게 안아주고 신나게 놀아주어야겠다. 아이들도, 아내들도, 여름기러기들도 모두모두 여름 방학 동안 고생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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