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 명절의식 변했다…교민들도 실속형 늘어
상하이 주재 한국기업에서 일하는 중국인 왕(王)씨. 해마다 춘절이면 고향인 안휘성을 오갔던 그가 올해엔 갈 길이 다르다. 귀향길 대신 직장 동료들과 해남도 4박5일 여행코스를 선택한 것. 고향을 떠난 후로 처음 있는 외도(?)라 마음이 조금 찔리긴 하지만, 그래도 많은 시간과 돈을 길거리에 버려가며 귀성전쟁을 치르던 예전의 경험을 떠올리면 이번 선택이 옳았다는 판단이 든다.
중국의 춘절 풍경이 달라지고 있다. 왕씨처럼 고향대신 국내외 여행을 떠나거나 ‘방콕’하면서 여유있게 휴가를 즐기는 중국인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중국사회조사원이 베이징, 상하이, 광저우 등 10개 도시 2천여 명 시민을 대상으로 전화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귀향 대신 여행을 택한 사람이 40%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 친지와 이웃을 찾아 다니며 새해 인사하는 대신 절반에 가까운 41%가 휴대폰 문자메시지로 새해인사를 대신할 것이라고 응답했다. 중국에서도 설이 민속 최대 명절이라는 의미가 퇴색하고, 대신 장기간 휴식의 시간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춘절의 본래 의미가 점차 퇴색되고 있는 것은 중국이 산업화되면서 나타나는 당연한 현상이다. 분주한 일상생활에서 해방되는 긴 연휴를 고향 다니느라 다 써버리는 것을, 도시인들은 더 이상 감내하고 싶지 않다는 뜻이다.
상하이 한국 교민들 역시 설에 대한 생각이 많이 달라지고 있다. 고향을 찾아 비행기에 몸을 싣는 사람들도 있지만, 올해는 그냥 상하이에서 연휴를 즐기겠다는 실속형 교민들이 크게 늘어났다. 치바오에 거주하는 교민 C씨는 “설 때 한국에 가면 출혈이 너무 크다”면서 “차라리 명절 지난 뒤에 여유 있게 다녀올 계획”이라고 말했다. 자영업자 K씨도 “평소 가족들과 대화할 시간이 부족했는데 모처럼의 휴가를 가족과 함께 영화도 보고 공원산책도 하며 보내겠다”고 말했다.
한편, 평소 가깝게 지내는 이웃들과 돌아 가며 식사초대를 하고 윷놀이를 즐기는 등 한국 교민들이 상하이 내 색다른 설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 김선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