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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주년 광복절 특집]상하이 임시정부 ②- 활동 위인

[2011-08-26, 20:34:43] 상하이저널
임시정부가 대한민국의 독립을 이루는데 맡았던 중대한 역할을 아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상하이에서 임정활동에 많은 공을 세우신 독립운동가들에 대해서도 알아보는 것이다. 이번엔 상하이 임시정부의 위대한 각원 두분, 안창호 선생과, 백범 김구 선생님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자.

안창호 선생 (1878.11.9~1938.3.10)

안창호 선생은 1878년 평안남도 강서에서 태어나 8세까지 집에서 한문을 배우고 9살에서 14살까지 한학을 배워왔다. 그는 어렸을 적부터 한학을 공부하면서 많은 사상을 키워나갔는데 1895년 청일전쟁 후 국력배양의 중요성을 직시하고 서울의 구세학당에서 공부하게 되었다. 안창호 선생이 24살이 되는 1902년 10월, 그는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건너가 노동을 하면서 고학하였다. 또한 1903년 샌프란시스코에서 한국인친목회를 조직하고, 1905년 대한인 공립협회를 설립하였다. 그는 야학까지 개설하여 위험을 무릅쓰고 회원들을 교육시켰고, 나중엔 샌프란시스코에서 공립신보를 발행하는데 큰 힘을 쓰기도 했다. 안창호선생은 공립신보뿐만 아니라 1912년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를 조직하고, 신한민보를 창간하기도 했다.

1919년 3.1운동직후, 안창호 선생은 곧 바로 상하이로 가서, 본격적인 임정활동을 시작하였는데, 그의 직위는 내무총장 겸 국무총리대리직이었다. 단순한 업무를 완성시키는 일을 제외하고도 그는 독립운동세력의 참여와 지지를 통해서 임정의 기능을 강화하려고 애를 썼고, 그는 1923년 임정의 국민대표회의부의장으로 임명 받았다. 1930년, 안창호 선생은 이동녕, 김구 선생 등과 함께 상하이에 한국독립당을 결성하여 독립운동에 더 많은 열정을 쏟아 부었다.

안창호 선생은 상하이에서의 임정활동을 하면서 압송되는 일도 없지 않았다. 1932년 4월 윤봉길 의거 직후 붙잡혀 서울로 압송되는 일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언제나 독립전쟁실력을 양성하는 준비를 해야 한다고 굳게 믿었고, 끝까지 뜻을 굽히지 않았다. 안타깝게도 그는 1937년 12월 병으로 감옥에서 보석되었다가 1938년 3월 10일,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했던 그의 생을 마감하였다.


 
김구선생 (1876.7.11~1949.6.26)

1876년 7월 11일 황해도 해주에서 김구선생이 태어났다. 선생의 부친은 가난한 환경 속에서도 강한 자존심과 저항정신의 소유자였고, 그의 어머니 역시 강한 인내심과 신념을 지닌 분이었다. 그는 어렸을 적부터 많은 항일운동을 해왔는데, 1919년 3월 1일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난 후 일본의 탄압이 더욱 심해지자 김구선생의 국내활동의 어려움을 일찍이 깨닫고 상하이 포동에 도착하게 되었다. 김구선생이 44세가 되던 1919년, 그는 상하이에 도착하자 마자 임시정부 내무위원으로 선임되어 임정활동을 하고 있었고, 얼마 후 임시정부 국무회의에서는 김구 선생의 나이를 고려하여 경무국장의 직위를 임명하였다.

1932년, 김구선생은 일왕에게 수류탄을 던지라는 명을 이봉창의사에게 내렸고, 윤봉길의사에게는 폭탄으로 상해 홍구공원에서 열릴 일본 황제의 생일축하장에 폭탄을 던지도록 하였다. 김구선생은 3.1 운동 이 후에 상하이로 망명하여 오로지 대한민국의 독립만을 위해 임정활동을 계속했고, 그는 마침내 1945년 8월 15일 우리나라가 광복이 될 때까지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이끌며 많은 애국지사들을 후원하며 일본의 탄압에 대항하게 이끌어 주셨다. 1949년, 김구 선생은 74세의 나이에 안두희(암살 범)에 의해 피습을 받아 운명하셨다.

안창호, 김구 선생을 제외하고도 수없이 많은 위인들이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한 항일운동을 지속해왔다. 그 위대한 각원들을 한 분 한 분 꼽아 보자면 열 손가락은 한참 모자랄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들은 각 각원들의 이름과 업적뿐만이 아니라 임정활동에 참여했던 모든 이들의 열정과 애국심을 본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많은 독립투쟁 자들이 조국해방을 위해 자신의 젊음과 청춘을 바쳤다.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 투쟁하셨던 우리의 조상들은 단지 다 큰 어른들이 성취해낸 업적이 아니라, 젊은 이들, 심지어 어린 학생들까지 모두 조국을 되찾자는 한 마음으로 뛰어들어 이루어낸 갑진 독립인 것이다. 이토록 소중한 독립을 이루어 내는데 중요한 장소였던 상하이에 거주하고 있는 한인교민들로써 얼마 전 66주년 광복절을 맞아 나이에 상관없이 강렬했던 우리 조상들의 애국심을 본 받고, 어려운 상황에서는 언제나 마음을 모아 일본에 맞서 대항할 수 있었던 우리나라의 민족성을 보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고등부 학생기자 윤지민(BISS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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