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맛있게 밥을 먹는 모습처럼 부모님을 뿌듯하게 하는 일은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선지 유독 밥을 먹기 싫어하고 편식이 심한 아이들이 있기 마련이다. 진료실에 있다보면 이렇게 밥 안 먹는 아이들을 데리고 오신 어머님들의 고민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오늘은 아이들 식욕부진으로 고민하시는 어머님들께 한의학에서는 이를 어떻게 이해하고 해결책은 어떻게 찾아나가는지를 이야기해보려 한다.
“입이 짧아 많이 먹지 않고 배가 아프다고 해요” - 비위기능이 약한 아이
제 조카 서준이는 키는 큰데 체중이 매우 적게 나가는 편인데요. 꽤 자주 피로를 호소하고 약간만 움직여도 땀을 많이 흘리는 편이기도 하다. 그러면서 입이 짧아 식사량이 매우 작고, 먹었다 하더라도 가끔 토한다거나 배가 아프다고 하기도 한다. 이런 서준이의 맥을 면밀히 잡아보니 역시 조금만 눌러도 저항하는 기미가 없었다.
이런 경우, 아이가 비위기능이 약하다고 본다. 말하자면, 소화흡수력이 약해서 위장에서 받아들일 수 있는 식사량이 적고, 먹었더라도 영양분을 잘 흡수하지 못해 충분히 피와 살로 가지 못하는 경우라 할 수 있겠다. 그래서 서준이에게는 군것질을 하지 못하게 하고 비위기능을 보강해주는 ‘성장전씨이공산’과 ‘양위진식탕’을 처방했다. 나중에 보니 식사량이 늘고 살이 붙었음은 물론이다. 장기적으로 복용하면 더욱더 좋아질 것이다.
“별로 먹지도 않는데 지치지도 않고 움직여요” - 신장의 기운이 약한 아이
얼마 전 진료실로 찾아 온 한 아이는 먹는 것도 없는데 지치지도 않고 활동하는 친구였다. 땀을 많이 흘리며 변은 단단한 편이었다. 친구들과도 금방 친해지는 성격이지만 매우 산만한 편이기도 했는데요. 맥을 잡아보니, 매우 힘이 있고 눌러 들어가도 맥의 저항감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런 아이들은 몸에 속열이 많아 안 먹는 경우가 많은데 그마저도 지나치게 많은 활동으로 소모해버려 몸에 체중과 키로 쌓일 겨를이 없는 상황이라 볼 수 있다. 이렇게 속열이 많다면 열을 다스려줘야 하는데, 신장(腎臟)이 그런 역할을 한다. 신장은 위로 끓어오르기 쉬운 열을 밑에서 적절하게 제어해주는 기능을 한다. 신장을 보해주는 자음강화탕을 처방하고 기다렸더니 잘 먹고 신장과 체중이 상당히 늘어났다.
“감기에 자주 걸리더니 입맛을 잃었어요” - 호흡기가 약한 아이
어린이집을 다니면서 감기에 자주 걸리는 아이들이 많다. 감기에 걸리면 아이의 몸은 총력을 다해 감기를 막아내려고 한다. 외부의 적을 퇴치하기 위해 몸의 에너지를 많이 소모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아무래도 아이들이 잘 안 먹는 경우가 많다. 콧물이 줄줄 흐르면서 코가 막히고 열이 펄펄 나니 입맛이 좋을 리가 없는 거죠. 더구나 이를 치료하기 위해 병원에서 항생제 등의 양약을 많이 먹는 경우에는 소화기의 장점막이 약해져서 더욱더 안 먹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럴 때는 보중익기탕을 처방해서 몸 전체의 면역기능을 높여주고 평위산 등으로 약해진 소화기능을 보강해주면 잔병치례를 덜 하게 되면서 식사를 다시 잘 하게 된다.
식욕부진 아이들을 위한 기본적인 주의사항
하지만 모든 문제를 약과 침의 힘을 빌어서 풀 수는 없다. 특히 식욕부진 아이들은 가정에서의 관리와 환아 자신의 행동의 변화가 수반되어야 기본 체질이 개선되고 장기적인 변화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서양에 ‘You are what you eat'이라는 말이 있다. 우리가 먹는 음식이 바로 우리를 구성한다는 것이죠. 과자, 아이스크림, 콜라, 사이다 등의 단 음식은 먹이지 말자. 단 음식을 먹으면 혈중 당수치가 급격하게 올라가면서 바로 칼로리가 보충되므로 식욕이 바로 떨어지게 된다. 또한 가능하다면 식사 전 1시간 반 정도는 공복을 유지하게 해주시면 좋다. 오죽하면 옛날에 “시장이 반찬이다”라는 말이 있지 않았나. 배가 고프면 한 덩이 보리밥과 소박한 된장으로 충분히 행복한 식사가 되지만, 배가 포만하면 온갖 산해진미가 단지 고통에 불과할 수 있다. 사랑스런 우리의 아이들 모두가 음식을 고루고루 맛있게 잘 먹어서 튼실하게 잘 자랐으면 좋겠다.
▷조재환(상해함소아한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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