色, 戒, Lust, Caution
•장르: 로맨스, 스릴러, / 미국, 중국, 대만, 홍콩| 157분| 2007
•감독: 이안
•주연: 량차오웨이(미스터 이), 탕웨이(왕치아즈/막 부인)
목숨을 건 게임 같은 사랑 色,
이중적인 삶의 쉼과 갈등 戒,
1942년 상하이의 한 고급 카페, 막(麦) 부인(탕웨이)이 카페에 앉아있다. 왕치아즈(王佳芝)라고도 불리던 그녀의 실체가 잠시 후 밝혀질지도 모르는 숨막히는 상황, 그녀는 막 부인을 선택할 것인지 왕치아즈로 돌아갈 건인지. 영화를 시작하는 순간에는 아무도 감을 잡을 수 없었다.
1938년 홍콩생활을 시작한 왕치아즈. 제2차 세계대전의 발발과 함께 영국으로 간 아버지를 기다리는 왕치아즈는 대학교 연극부에 가입하게 된다. 그리고 연기를 통해 사람들의 마음이 자신의 뜨거운 연기에 함께 움직인다는 걸 느끼며 무대 위의 희열을 맛보게 된다. 왕치아즈는 무대 연기의 떨리는 그 느낌, 찰나의 순간에 매료된다.
그러나 연극부는 연극을 통해 애국심을 고취하려는 급진파 광위민(왕리홍)이 주도하는 항일단체로 친일파의 핵심인물이자 모두의 표적인 정보부 대장 ‘이’(양조위)의 암살계획을 세우고 광위민의 친절에 호감을 느끼던 왕치아즈는 친구들과 계획에 동참한다. 그녀의 임무는 자신의 신분을 위장하고 이의 아내(조안첸)에게 접근하여 신뢰를 쌓은 후 이에게 가까워지는 것. 계획대로 접근했으나 처음 본 순간 두 사람은 운명적으로 서로에게 끌리지만 결코 경계를 풀지 않는다. 그러나 이는 상하이로 발령이 나고 계획은 무산된다.
1941년 다시 상하이. 홍콩에서 돌아와 피폐해진 생활 속에 학업을 계속하던 왕치아즈에게 광위민이 찾아와 다시 막 부인이 되어 더욱 권력이 강해진 이의 암살 작전에 주도적 역할을 해주길 부탁한다. 가슴속에 흔들리는 감정을 품은 채 다시 만나게 된 왕치아즈와 이는 3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뒤 서로의 존재에 관계가 거듭될수록 이는 점점 경계를 풀고 그녀를 더욱더 깊이 탐하게 된다. 몸을 던져 마음을 얻은 왕치아즈 역시 서로가 연기인지 사랑인지 모를 격한 소용돌이 더욱 흔들리게 된다. 그리고 1942년 상하이의 카페. 비극적인 운명 앞에 결정을 내려야하는 막부인은……
“당신은 달라, 두려움이 없지”
그의 色, 戒,
이(양조위)는 늘 질식할 듯 하루를 살고 있다. 친일파 앞잡이라는 이름 앞에 동족을 심문하고 기밀을 관리하며 하루하루 목숨을 건 게임 같은 삶을 그는 살고 있다. 이는 자신을 지키는 일이 나라를 잃는 아픔 보다 컸던 사람. 그런 그에게 사랑은 또 다른 심문이자 고통이었다.
거칠고 가학적으로 막 부인에 대한 갈증을 표현하고 쾌락의 고통 속에서 자신을 응시하는 막부인이 진실이 보일 때 이가 마음의 문을 열면서 한 말. “당신은 달라, 두려움이 없지.”
두려움 없는 사랑, 그 사랑의 실체가 자신을 지키기 위한 연기였는지는 영화를 보지 않은 이는 알 수 없다.
“뱀처럼 그가 내 심장을 뚫고 들어올까 겁이나요”
그녀의 色, 戒,
막 부인(탕웨이)으로 살았던 처음부터 끝까지. 그녀는 단 한 번도 그의 눈길을 피하지 않는다. 둘만의 공간에서 그녀를 가학적으로 대하는 그를 똑바로 응시하며 사랑을 나누고 얘기를 나누며 들키지 않는 스파이가 된다. 그녀에겐 두려움도 부끄러움도 망설임도 없다. 그녀는 전장에 홀로 남겨진 상처받은 스스로를 위한 페르소나, 무대 위 열정적인 왕치아즈의 페르소나, 격한 사랑에 흔들려하는 막부인의 페르소나를 가진 완벽한 배우이기 때문이다. 그녀가 마지막까지 완벽한 배우였는지는 영화를 보지 않은 이는 알 수 없다.
사랑과 죽음, 화두를 던져주던 닮은 영화 '유리'
영화 색.계를 보고 다시 생각난 영화 ‘유리’. 33세의 청년 수도승 유리. 관념의 유토피아 유리를 찾게 된다. 죽음과 사랑이란 화두를 받고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의 상태로 뛰어 들어가 몸을 파는 것으로 수행을 하는 누이와 육체를 통해 영혼의 결합에 이르기를 갈구한다. 정사를 통해 사랑보다 더한 죽음을 이해하려 한다. 사랑과 죽음의 한 연구라는 면은 색.계와 닮아있으나 색.계 만큼 고혹적이지는 않다. 영화 ‘유리’는 해 탈을 위해 갈구하는 깊은 성찰의 고통이 중심이 된다면 영화 색.계는 인간의 모든 욕망과 고뇌 속에 찾은 뜨거운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판타지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색계의 작가 장아이링(张爱玲), 그녀가 상하이에 남긴 색계의 흔적을 찾아보자.
종이와 펜으로 만들어낸 격정의 색.계. 영화 속 왕치아즈는 무대를 거침없이 누비는 배우의 모습으로 그에게 다가선다. 그것은 곧 장아이링(张爱玲)의 열정이고 무대 위의 왕치아즈이자 이(양조위)에게 거침없는 막부인이었다. 그녀가 상하이에 남긴 색계의 흔적, 첫 번째 ‘장아이링이 살았던 창더꽁위(常德公寓)’와 지금도 막부인이 앉아 이를 기다릴 것 같은 찻집 ‘장아링 카페(BOOK&WINE)’을 찾았다.
常德公寓/L's(张爱玲咖啡)
아이링이 상하이에서 처음 머물렀다는 창더꽁위(常德公寓). 옛 이름이 아이린덩공위(爱林登公寓)일 정도로 그녀와 인연이 깊은 곳이다.
창더꽁위 1층에 자리한 L's(张爱玲咖啡). 조용하고 자그마한 북 카페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안은 꽤 넓다. 책 토론회도 열리고 작은 영화제도 열리는 2층 공간 외에 야외 테라스도 아담하게 갖춰져 있고 무엇보다 장아이링의 흔적이 담긴 그녀의 포스터와 장아이링의 서적도 볼 수 있다. 간단한 식사와 베이커리도 있고 계절별로 장아이링의 느낌이 담긴 음료가 준비되는데 겨울철엔 그녀를 닮은 ‘非常爱玲’이 있다.
非常爱玲 40元
‘뜨거우니 조심하라’는 복무원에 말에 조심스레 만져본 투명하고 긴 잔. 살짝 맛을 본 순간, 짧은 탄성이 나온다. 이름 그대로이다. 뜨겁지만 코끝과 입안에 장미향 짙은 부드러운 맛! 그녀는 이렇게 짙은 장미향으로 표현 될 만큼 열정적인 삶을 살았단 말인가. 부러움이 가슴속에서 뜨겁게 올라왔다.
•常德路 195号 L's(张爱玲咖啡)
•021)6249-9006
광둥 퓨전 레스토랑 ‘진루(锦庐/THE CHINOSE STORY)’
영화 속에서 마작을 즐기며 소일하는 부인들의 대화에선 상하이요리를 잘하는 식당 얘기가 줄곧 나온다. 부인들의 이미지와 잘 어울리는 ‘타이타이모임’에 고급스럽고 우아한 광동요리 퓨전레스토랑 진루(锦庐)는 어떨까. 광동요리 퓨전레스토랑답게 누구나의 입맛에 잘 맞는 아름답고 특별한 요리를 소개한다.
柠汁芥辣三文鱼卷(58元) 사진 049
무척이나 화려한 진루의 차이단(菜单). 커다랗고 화려한 사진에 현혹되지 말라. 아름답지만 나오는 양은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가 찾아간 소인국 스타일. 접시 위에 놓인 화려한 비쥬얼에 적은 양이 용서되기도 한다.
鲜果烤鸭酥方(68元)
진루의 카오야를 핑거푸드로 맛보자. 아름다운 치파오를 입은 친절한 복무원이 직접 말아준다. 얇은 치즈처럼 쫀득하고 부드러운 밀전병에 바삭한 비스켓과 야채와 카오야 속의 소스는 새롭고 만족스럽다. 아이들도 좋아할 멋진 메뉴.
奇味汁鸡丝米卷(38元)
하얀 접시에 온갖 봄빛 컬러가 모여 있다. 이른 봄을 입안에 넣고 아삭거리며 씹어본다. 상하이로 이민 온 달콤하고 신선한 베트남의 맛.
坚果鹅肝膏,葱油小饼(98元)
캐비아, 푸아그라, 홀 트러플(송로버섯)은 ‘세계 3대 진미’로 불린다. ‘진루’에서는 세계 3대 진미 중의 하나인 푸아그라를 에피타이저로 맛 볼 수 있다. 파(spring onion)의 원산지는 중국인데 부드럽고 씹힐 듯 말 듯 파가 들어간 팬케익과 푸아그라가 만났다. 열강 제국주의 앞에 여린 파 꽃 같은 왕치아즈를 떠올리는 건 오버겠지만 독특한 맛의 조합임은 틀림이 없다.
鲜茄芝士虾排(68元)
매우 싱싱한 바다와 싱그러운 봄채소가 만난 메인메뉴. 무르고 달큰한 토마토도, 감탄이 나오는 상큼한 소스에 버무려진 샐러드도 모두 맛있다.
黑椒汁(鲍汁)牛肋骨(78元)
다양한 퓨전요리 앞에서도 허기질 땐 하얀 밥이 최고. 육질에 따라 장조림표 갈비스테이크가 될 수 있으니 그럴 땐 주저 없이 밥 하나를 추가하자. 잘 조려진 맛난 갈비스테이크에 하얀 밥의 조합은 든든한 포만감을 준다.
茶(壶50元)
한 주전자씩 주문할 수 있다. 중국식 광둥요리에 다양한 퓨전 맛이 가미되다 보니 한잔의 茶가 주는 맛도 먹는 요리에 따라 다르다.
•茂名南路59号锦江饭店锦北楼
•021)6445-1717
<맛있는 영화평>
서혜정
장아이링이 즐겨 찾았다는 카페에 앉아서는 모든 순간이 소설이 된다.
김나래
색계의 탕웨이 분위기가 그대로 느껴지는 ‘진루‘의 인테리어, 감질나게 나오는 화려한 세팅의 요리, 모두 여우같이 새침한 상하이 같다. 영화 속 太太들이 모여서 마작을 하며 요리 얘기로 수다를 떠는 소소한 장면처럼 상하이의 太太가 된 나 역시 상하이다움에 흠뻑 취해 색색의 꽃이 새겨진 그릇으로 세팅 된 테이블에서 맛보는 요리는 짜릿함 마저 느껴질 지경이다.
▷사진 · 글 : 서혜정(프리랜서 기고가 fish717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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