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진 속에 나는 없다 나는 시간을 찍었나 보다.’
시인의 시처럼 나는 지난 10년 동안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중국으로 이사를 올 때 부치지 않고 직접 들고 온 짐이 아이의 사진앨범과 액자였다. 하지만 한 번도 벽에 걸어 보지 못했다. 벽에 못질하는 것 자체를 싫어하는 중국 방동(房东) 덕에.
그러다 보니 액자는 애물단지처럼 되어 버렸다. 진즉 앨범이나 사진액자에 대한 미련이 적은 터라(웨딩사진 액자도 하지 않았던 성격이라) 아이들의 성장기 사진은 인화하지 않고 폴더(file folder)에 저장하는 걸로, 대신 아이들이 커서 서운하지 않게 일주일에 세 번 이상 일상 사진을 찍어 정리해주는 걸로 방법을 바꾸고 어느새 아이의 성장사진 폴더가 10년의 기록이 되었다. 한국에서 신혼살림을 차리자 샤먼으로, 홍콩으로, 상하이로 옮겨온 게 다인데 10살, 5살의 두 아이가 생기고 결혼생활 10년의 시간은 카메라 셔터소리처럼 경쾌하게 지나갔다.
타국생활 외롭지 말라고 남편이 사다 준 디지털 카메라는 탁월한 선택이었다. 뭔가에 정성을 들이고 모으고 정리하길 좋아하는 나는 처음 카메라를 들고 나가서는 하루에 서 너 장도 긴장하며 찍었는데 지금은 아이들과 외출했다 돌아오면 100장, 200장씩 사진이 들어있다. 사진을 막 찍기 시작한 초창기엔 잘 나온 사진으로 보기 좋은 기록만 남아있고 사진숫자도 적었다. 잘 나온 사진이 현재의 행복을 나중에도 느끼게 해주겠지 싶었지만 추억은 사진 속에서 웃지 않았던 시간도 그립노라 말하게 되는 것임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아이들의 성장사진을 찍기 시작한 즈음엔 내 아이 모습만 파인더에 보이더니 차츰 사는 동네, 먹는 음식, 만나는 사람도 찍게 되었다. 카메라 파인더로 보는 세상이 더 익숙해진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사진 속의 내 삶은 사각 프레임의 틀 안에서 내가 원하는 대상이 뚜렷해서 좋았다.
내가 보고 싶고 남기고 싶은 것만 보던 나는, 카메라와 함께 결혼생활 10년 동안 파노라마 카메라처럼 제법 넓게 많은 것들을 보고 찍고 남기고 느끼고 변하고 있었다. 하지만 사진 속에 내 모습은 없다. 정말 난 시간을 찍고 있었나.
며칠 전, 노트북에 아이들이 주스를 쏟아 노트북이 사망 직전까지 가는 가슴 쓸어 내릴 일이 있었다. 노트북의 전원이 나가버리는 순간, 노트북 안에 얼마나 많은 사진자료가 있었던가가 생각이 나고 지금까지의 시간이 사라진다는 생각에 무기력해지기까지 했다.
다행이 남편의 수고스러움과 정성으로 별 탈 없이 해결이 되었지만 결국 반영구적인 기록도 이런 일 앞에선 소용이 없구나 싶었다. 지난 시간을 영원히 잡아두고 싶은 게 미련한 욕심이지만 하루하루를 즐겁게 일상을 바라보는 최선의 방법으로 장을 보러 나가면서 카메라를 챙긴다. 사진은 내게 추억의 기록이다.
▷Betty (fish7173. blog.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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