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2대 명재상 ‘관중과 제갈량’
긴 중국 역사 속에 한 시대를 풍미했던 4대 명재상으로 관중, 제갈량, 장거정, 왕안석 이 네 사람이 꼽힌다. 그 중에서도 두 명의 인물만을 꼽는다면 단연 관중과 제갈량이 주저 없이 중국의 2대 명재상으로 거론된다. 중국의 역사를 통틀어 이 두 사람은 당시뿐만 아니라 지금까지도 중국의 큰 틀을 이루는 데 커다란 영향을 끼친 사람들이라 할 수 있다. 중국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또한 중국에 대한 깊은 이해를 돕는데, 과거를 통한 현재의 성찰이 중요함은 말할 것도 없다. 인물을 통해 역사를 살펴봄으로써 중국의 특성과 더불어 현재의 한중 관계, 더 나아가 국제 사회 속에서 한국의 역할을 찾을 수 있다.
중국 삼국시대 제갈량이 무척이나 흠모했던 춘추시대 제나라의 재상 ‘관중’. 춘추시대 제 환공을 도와 패업을 달성하여 제나라를 부강시켰으며 역대 중국 왕조에 경제 사상을 처음으로 전파한 인물이다. 관중은 안으로는 제나라의 내정을 다지고 밖으로는 외세의 침략에 철저히 대비하며 부국강병을 이루어 냈다.
관중은 넓은 마음과 큰 뜻을 품고 끝까지 패업에 대한 열망을 놓지 않으며 백성을 안정시키고 나라의 상업을 크게 발달시켜 결국 대업을 완수했던 실리적인 인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특히 중원의 패주국으로써 주변의 제후국들을 대표하여 중원의 질서를 이끌고 왕실과 제후국들 사이에서 그 문화의 균형을 유지시켜 나갔던 그의 신중한 행보로 인해 제나라가 이후 200년 동안 중원의 강국으로 설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항상 명분과 실리 사이를 오가며 자신이 지닌 재주를 마음껏 펼쳐 보이면서도 언제나 스스로를 낮추고 눈 앞의 이익 대신 더 크고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바라보고 대비할 줄 아는 안목을 지녔다는 점에서 오늘날 우리들도 깊이 생각해 볼 만하다. 관중의 사상과 정치적 견해는 이후 부국강병을 추구하는 많은 국가의 인재들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 주는 중대한 모델로써 적용되었다.
‘관중, 소하와 비교할만하다’라는 평가의 주인공 ‘제갈량’. 그는 공명(公明)이란 이름으로 더 유명한 인물로 삼국지 시대로 불리는 후한시대 말기에서 위진시대 초기까지 일세를 풍미한 대전략가이자 정치가이다. 삼국시대 때 유비를 도와 각종 전장을 지휘하고 전술을 구사하며 수많은 전쟁을 승리로 이끈 뛰어난 군사가이자 촉나라의 승상으로 농토를 넓히고 법률을 개혁하며 부국강병의 길을 넓힌 위대한 정치개혁가, 행정가이기도 하다. 이처럼 뛰어난 재능과 넓은 기량에도 불구하고 때를 만나지 못해 끝내 뜻을 이루지 못했지만 그는 이후 중국 전체 역사를 통틀어 수많은 영웅 재사들의 흠모의 대상이 되어 현 중국의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고 지금까지도 그에 대한 찬사와 동경은 그와 관련된 수많은 일화들과 함께 이어져 전해지고 있다. 제갈량은 충절과 성실로써 평생을 나라와 백성을 돌보는 데 헌신했던 현신(賢臣)의 전범으로 여겨지며 전설에 가까운 인물로 많은 사람들에 의해 회자되고 있다.
▷고등부 학생기자 홍은혜(상해한국학교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