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맘때쯤 꽃시장에 가면 어디를 가나 크리스마스 장식품이 거리를 가득 채우고 있다. 무심결에 지나치려 해도 저절로 발걸음이 멈춰지고, 들여다보며 미소 짓고, 어느 결에 만지작거리고 있는 나를 보게 된다. 참 예쁘다. 참 좋다. 참 따뜻하다.
연말이 다가오는 정서가 크리스마스와 맞물려 어둠을 밝히며 영롱하게 빛나는 촛불의 따뜻함으로 나를 이끌어가는 듯하다. 그러다 보니 나도 이맘때쯤이면 집 안 곳곳에 크리스마스 소품을 늘어놓고, 크리스마스트리를 세우고 아이들과 꾸미는 시간을 갖는다. 꼬마전등에 노란 불빛이 밝혀질 때면 우리 가족 모두 그 따뜻한 불빛에 녹아든다. 거기에 밤에 촛불 하나 켜 놓고 잠자러 갈 때면 이맘때 아이들은 이 땅 위에 잠시 내려온 천사들 같다.
그리고 11월이 다 저물어가는 이 무렵이면 중국에서는 좀체 구하기 힘든 유자를 전해주는 이가 있다. 거짓말이 아니라 중국 유자는 한국의 배만 하다. 속에 든 씨도 커서 아이들과 함께 씨를 빼고, 즙을 짜고, 잘게 채 썬 다음 설탕에 재우는 일을 함께할 때면 온 집 안이 유자향으로 가득 채워진다. 크리스마스트리와 집안 곳곳에 장식한 크리스마스 분위기와 꼬마전구의 노란 불빛과 함께 집 안 가득한 유자향이 올해 우리 막내에겐 유독 특별했나 보다. 유자차 담그기가 끝나갈 무렵 환하게 웃으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엄마, 날씨는 추운데 우리 집은 더욱 따뜻해져 가는 것 같아요. 겨울을 준비하는 것 같아. 호호호.”
아이의 이 한마디가 갑자기 온 집 안의 온도를 3도는 올려놓은 듯 훈훈해졌다. 여덟살 이 아이의 눈에 우리 집의 11월, 12월은 이렇게 차곡차곡 쌓여왔나 보다. 매년 하던 일이라 의식하지 못했는데, 아이의 말 한마디가 갑자기 무의식적으로 하던 일들에 따뜻함을 불어넣고 행복감을 배가해준다.
12월 중순을 넘어서면 남들 보기에는 꽤 많은 김장을 한다. 우리 집 겨울맞이의 방점을 찍는 날이기도 하다. 김장을 마치고 나면 비로소 겨울이 오는 듯한 착각. 아이 말처럼 겨울맞이를 김장으로 막 마치고 나면 겨울나기 걱정이 없어진 느낌이랄까? 넉넉한 유자차와 김장을 이웃과 나누며 그렇게 겨울이 시작된다.
중국에 산 지 오래되다 보니 고국의 단풍 든 산을 사진으로 추억하고 그리워하며 가을을 맞곤 하던 나다. 그래도 올해는 그나마 나은 게 스마트폰이라는 문명의 이기를 빌어 한국의 실시간 가을을 본 덕에 감상에 덜 젖은 듯하다. 겨울을 재촉하는 듯한 비가 상하이의 대지를 적시고 있다. 겨울맞이를 하다 보니 고국을 그리워하게 만들던 가을이 이별을 고하며 2012년의 마지막 계절의 자리를 겨울에게 넘기고 저만치 사라져가고 있다. 적어도 내겐 그렇다. 나도 깨닫지 못한 겨울맞이 덕에 무척 행복한 2012년 11월의 마지막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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