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마지막 달이 엄마의 칠순이시다.
“엄마~ 김 서방이 엄마 상하이오시라는데. 여기서 엄마 생신 상 차려드리고 싶다고 오시라는데.”
“야야~바빠서 못 가. 요즘같이 형편 안 좋을 때 연말이 이렇게 바쁘기도 힘들어~ 말은 고마운데 못 가야~ 가도 봄에 갈게. 엄마아빠랑 둘이 보내도 좋으니 걱정하지 마라.”
어릴 적 우리 집은 늘 크리스마스 파티를 했다. 우리 5남매가 좋아하는 과자와 고로케 빵, 단팥빵이랑 배와 사과, 케이크가 상위에 차려지고 둘러앉아 케이크에 불을 붙이고 크리스마스 캐롤 송 끝에 부르는 노래는 ‘사랑하는 엄마의 생일 축하 합니다’ 였다.
음력으로 엄마의 생신이 그 즈음이라 아빠는 엄마를 위해 늘 크리스마스 파티를 준비하셨던 거다. 상 위에 차려진 단팥빵이랑 고로케, 과일도 엄마가 좋아하시는 간식이었고 아빠는 매해 새롭게 데코레이션 되어 나오는 케이크를 엄마를 위해 준비하셨다.
“느이 아빤 엄마 생일에 늘 홍어회무침을 직접 해줬어~ 언젠가부터 홍어 구하는 게 쉽지 않아 가오리를 사다가 무침을 해주고 하더라.”
생각이 난다. 커다란 스댕 그릇에서 바쁘게 움직이던 아빠의 손. 엄마의 생신 날이면 아빤 미역국 대신에 홍어회 무침을 직접 만드셨다. 꼬들꼬들하게 양념이 맛나던, 차가운 겨울에 먹었던 홍어회는 매년 엄마에게 선물한 사랑이었던 것을 사춘기 즈음부터 눈치는 챘다. 나를 데리고 엄마 몰래 장을 보며 다니셨는데 어느새 아빠의 자전거엔 주렁주렁 까만 비닐봉지가 여러 개 달려있고 신나게 페달을 밟아 집에 돌아오면 요리를 하셨다. 말이 요리지, 그땐 어려서 결과물만 보고 맛있다고 신나했지만 커서 보니 어질러 놓은 부엌이 말도 아니었다.
양념이란 양념통은 다 나와 있고 요리를 하고 바로 씻지 못해 양념이 눌러 붙은 그릇이며 손질하다만 채소들이며 정신이 하나도 없는 부엌을 엄마는 이미자 노래를 흥얼거리며 치우시곤 했다. 엄마가 일상에 지칠 때면 생선을 사다 직접 갈아 튀겨서 어묵도 만들어주시고, 커다란 곰 솥에 하나 가득 짜장을 만들어 놓고 배고플 때마다 알아서 먹기!라고 명령하시곤 두 분은 안방 아랫목에서 팔베개하고 코를 골며 반나절을 주무시기도 했다.
이 글을 쓰며 드는 생각이 우리가 크면서 차려드린 엄마의 생신상은 사실은 두 분의 이벤트를 뺏어 버린 건 아닌가 싶다. 두 분이 함께 보내도 좋다는 엄마의 칠순 생신. 호호백발의 부부가 마주앉아 생일케이크에 불을 붙이고 칠순을 맞은 아내에게 홍어회 무침을 만들어 생일상을 차려주는 할아버지의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왜 이리 뭉클한 건지.
오랜 시간 곰삭은 감칠맛 나는 진한 홍어회처럼 40년을 보낸 두 분에게 올해는 함께 보낼 시간을 드릴까 싶다. 40년의 시간을 부모님으로만 생각했지 부부의 40년 정은 생각하지 못했다. 이제 10년의 시간을 보낸 나로서는 감히 짐작도 못할 세월을 보낸 부모님의 사랑과 믿음. 나야 뭐 딱히 기억에 남는 이벤트도 없었지만 마음만큼은 두 분을 꼭 닮게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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