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톡 내 프로필에 산타 사진을 올려놓았다. 딸아이가 물어왔다.
“엄마, 그 산타가 뭐지?”
“나한테도 산타가 오시려나 해서 올려 놔 봤다.”
“엄마가 꽤 외로운가 보네, 산타를 다 기다리고….”
“그러게, 나도 그냥 크리스마스 기분이나 좀 내 보려구.”
지난 주에 들른 헤어샵에서 캐럴 송도 실컷 들었고, 꽃시장에 가서 크리스마스 장식들도 맘껏 구경했고, 예원 근처상가에서 진열되어 있는 빨간 옷에 흰수염을 단 산타의 모습도 내 눈 가득 담아봤다. 가는 곳마다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연출하느라 모두들 분주해 보였다. 바라다보는 내 눈길도 덩달아 바빠지고 있었고.
집에선 그나마 깊숙이 쳐박혀 굴러 다니던 크리스마스 트리가 자취를 감춘 지도 벌써 몇 년이나 된 것 같다. 선물을 주고 받는 일도 조금씩 어색해지고 있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귀찮아지는 것인지, 젊은 애들을 흉내내는 것만 같아 못내 쑥스러운건지 왠지 모르게 내 몸에 안맞는 옷인 양, 내게서 조금씩 멀어져가는 듯하다. 그래도 산타가 오면 좋을 것 같은데….
비교적 따뜻한 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던 나로서는 서울에서의 대학 1년생의 겨울은 참으로 신비로웠다. 송이 송이 눈꽃송이 하얀 꽃송이…… 하~얀 눈 위에 구두 발자국 바둑이와 같~이 간 구두발자국……. 책에서만 봤던, 노래로만 듣던, TV 세상 안에만 있을 것 같은, 그러한 하얀 세상을 실컷 보게 되었을 땐, 내 마음이 정말 하얗게 맑아졌었다. 뽀드득~뽀드득~ 소리가 너무나 신기해서 일부러 발에 힘을 주고 걸으면서 귀 기울여 들어보려 했었다. 그러다 그 다음 겨울엔 채플시간에 맞춰 눈 쌓인 계단을 올라 갈 때는 왜 하필 오늘 눈이 내리는 거야 원망하기 시작했고, 그러다 꽝꽝 얼어붙어 버린 길에다 원성을 소리를 쏟아 붓기 시작했고.
그래도 그 시절엔 우린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기대했었다. 하얀 눈이 우리에게 크나큰 축복이기라도 한 듯, 007 영화를 보는 것도 좋았고, 성탄절이면 해마다 TV에서 방송되던 영화 벤허도 결코 지루하지 않았었다. 레코드, 카세트테이프가게에서 흘러나오는 캐롤송을 들으며 종로나 명동거리를 걸어 다니기만 해도 절로 입가에선 하얀 입김 속에서 절로 웃음이 흘러나왔었다. 따뜻한 오뎅국물 한 컵이면 얼었던 온 몸을 녹이기에 충분했었다. 발이 꽁꽁 얼어 붇는 줄도 모르고서 우리들은 이 거리, 저 거리를 돌아다니며, 깔깔거렸다. 그렇게 크리스마스는 소박했지만, 크리스마스라는 글자만으로도 우리들 가슴은 따뜻하게 녹아 들고 있었다.
아이가 태어나면서 아이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해주기 위해서 겨울이면 크리스마스 트리에 종이며, 별이며, 온갖 장식품들을 걸어가며 집을 꾸미기 시작했었다. 하루 종일 캐롤송을 듣고 있어도 지루하지가 않았었다. 때마침 눈이라도 내리면, 눈내린 나무사이에 아이를 세워두고 사진을 찍으려 셔터를 눌러대느라 참~ 분주했었다. 자동차 위에 소복이 쌓인 눈을 손으로 털어내다 꽁꽁 얼어붙은 손을 호호 불면서도 아이의 웃음 소리에 그저 마냥 즐거웠었다.
이제는 TV에서 보여주는 성탄특집 영화나 보면서 집안에서 따뜻하게 보내는 크리스마스가 더 편하고 좋다. 오징어나 쥐포를 뜯어가면서 귤 껍질을 까면서 소파에 기대어 보내는 크리스마스가 더 편하고 익숙하다. 마음 한구석에선 도심 어딘가에서의 떠들썩한 분위기가 궁금하기도 하지만 그건 내 삶의 젊음의 저편 자락에 남겨져 있게 두고 싶다.
“크리스마스에 뭐 할거에요?”
“글쎄, 그냥, 집에서 방콕하면서 따뜻하게 보내지 뭐. 애들이 학교에 안가니깐 밥순이 노릇이나 하면서….”
산타가 엄마, 아빠라는 걸 알고 난 뒤부터는 아이들은 투덜거린다, 선물을 못 받게 되었다고. 그냥 엄마, 아빠가 계속 산타하면 안되냐고? 이제는 너희들이 산타가 되어야지. 엄마도 산타가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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