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삼국지는 진나라의 학자 진수가 편찬한 것으로 사기(史记), 한서(汉书), 후한서(后汉书)와 함께 중국 전사사(前四史)로 불린다. 위서 30권, 촉서 15권, 오서 20권 합계 65권으로 되어 있으나 표(表)나 지(志)는 포함되지 않았다. 위나라를 정통왕조로 보고 위서에만 제기(帝纪)를 세우고 촉서와 오서는 열전(列传)의 체제를 취했다.
삼국지연의는 진수의 삼국지에 서술된 위, 촉, 오 3국의 역사를 바탕으로 전승되어 온 이야기들을 중국 원과 명의 교체기 때의 사람인 소설가 나관중이 장회소설 형식으로 재구성한 장편 역사소설로 수호지, 서유기, 금병매와 함께 중국 4대 기서의 하나이다. 원명은 삼국지통속연의인데 삼국의 정사를 알기 쉬운 말로 이야기 한 책이라는 뜻에서 삼국지평화(三国志平话)라고도 불린다.
진수의 삼국지에 서술된 위, 촉, 오 3국의 역사는 천하의 패권을 둘러싸고 3국이 벌이는 힘과 지혜의 다툼이 워낙 치열하게 펼쳐졌기에 일찍부터 중국인들에게 흥미 있는 이야기로 전해져 왔다. 전상삼국지평화(全相三国志平话) 명시대에도 출판되었지만 야담과 화본에 기초해 있었기에 허황된 내용이 많이 포함되어 있었고 역사적 사실과도 차이가 많았다. 그래서 나관중은 전상삼국지평화줄거리를 근간으로 하되 진수의 삼국지와 429년의 배송지가 이를 보완한 삼국지주, 사마광의 자치통감 등을 바탕으로 역사적 사실에 어긋난 부분을 바로잡아 장회소설(章回小说) 형식으로 재구성하여 삼국지 연의를 편찬하였다.
삼국지연의는 천하를 통일하기까지의 역사를 유비, 관우, 장비 등 세인물의 무용과 제갈공명의 지모를 중심으로 서술하고 있다. 하지만 오늘날 원본은 전해지지 않으며 명의 가정제가 전해진다.
삼국지통속연의란 제목으로 간행된 이 판본은 홍치제때인 1494년의 서문이 실려있어 홍치본, 혹은 나관중의 성을 따서 나본으로도 불린다. 모두 24권 240절, 혹은 칙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가장 나관중의 원본에 가까운 것으로 여겨진다.
삼국지연의 중국인에게 오랫동안 애독되었고 그 내용은 연극이나 강담 등으로 글자를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전달되었다. 관우는 민간에서 신앙의 대상이 되어 관제묘가 곳곳에 세워지기도 했으며 삼국지연의에서 비롯된 삼고초려나 계륵, 읍참마속 등의 표현이 고사와 함께 널리 쓰였다.
삼국지연의는 조선시대에 국내로 유입되어 널리 읽혀졌던 작품으로 처음에는 중국의 원본이 수입되어 읽혔으나 곧 번역본이 출간될 정도로 인기가 있었다.
삼국지연의 주인공
조조(曹操)
자는 맹덕(孟德), 위나라의 정치가이자 군사가이다. 원래 성이 ‘하후(夏侯)’씨였으나 조조의 아버지 조숭이 환관인 조등의 양자로 들어가게 된 것이 원인이 되어 조 씨성을 지니게 되었다.
후한이 힘을 잃어가던 시기에 탁월한 재능으로 여러 제후들을 격파하고 중국대륙의 대부분을 통일하여 위(魏)나라의 기틀을 닦았다. 위나라는 오늘날 중원, 화북지역으로 서울은 뤄양(洛阳)이다. 조조는 비록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긴 했으나 황제에는 오르지 못했고 훗날 그의 아들 조비가 황제의 자리에 오른다.
유비(刘备)
자는 현덕(玄德), 촉한의 초대 황제(221년 ~ 223년)이다. 촉한의 땅은 오늘날 스촨성 서남지역으로 수도는 청두(成都)이다. 전한(前汉) 경제(景帝)의 아들인 중산정왕(中山靖王) 유승(刘胜)의 후예로 알려져 있다. 기반이 결여된 상태이지만 관우, 장비, 제갈량 등 인재들을 등용하여 당대의 패자였던 조조와 끝까지 맞서 촉한을 건국하는 인물이다. ‘삼국지연의’에서 유비는 한 황실 정통성의 대명사로 인덕이 있고 자애로운 지도자로 그려지고 있다. 그러나 현대에 들어 재평가가 이뤄지면서 무능한 군주였다는 평을 받기도 한다.
손권(孙权)
손견(孙坚)의 아들. 손견은 후한 말의 장수이며 손자병법의 저자 손무의 직계후손으로서 오의 기초를 닦은 사람이기도 하다. 손견은 무예가 뛰어나 17세에 도적떼를 소탕해 이름을 떨쳤으며 그 용맹함이 사방에 떨쳐 ‘강동의 호랑이’로 불리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의 나이 37세때 전쟁터에서 전사한다. 장남 손책(孙策)도 한창 기반을 다지고 세력을 키워나가고 있던 중 독화살을 맞은 것이 화근이 되어 젊은 나이에 세상을 하직한다. 손책이 급사 후 그의 동생 손권이 뒤를 이어 오후(吴侯)에 올라 강동(오늘날 장쑤성 이남, 저장성북부 및 안후이성 창장 이남 일부 지역 및 장시 동부, 수도 난징)을 다스리는데 그가 바로 훗날 오나라의 초대 황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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