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어학회 항일투사 33인-7]
말과 글은 민족의 혼, 정태진
해방 뒤 미군정으로부터 외교부 고문관과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문교부 장관의 초빙도 거절하고, 조선어학회에 복귀하여 오로지 국어대사전인 <조선말큰사전>의 편찬에만 헌신하던 인물이 있었다. 6•25전쟁 기간에 부산 피난 생활을 거부하고, 서울로 올라가 1952년 10월 <조선말 큰사전> 4권의 지형을 떠놓고, 고향인 경기도 파주에 식량을 구하러 가다가 군용트럭이 전복되어 50세의 나이에 서거한 인물이 있었다.
사실 그는 일제강점기부터 우리말과 글을 영구히 보전하기 위해 국어사전 편찬에만 헌신하였다. 이 인물이 누구인지 아시나요? 이 분이 바로 정태진(丁泰鎭, 1903∼1952, 호는 석인(石人)) 선생이다. 그렇다면 정태진은 누구인가?
그는 1903년 7월 25일 경기도 파주군 금촌읍 금능리 406번지에서 태어났다. 1921년 경기고보를 졸업하였다. 1925년 3월 연희전문 문과를 졸업하였다. 연희전문 재학시절 정인보 교수, 이관용 등의 감화를 받아 조선의 독립을 희망했다.
1948년 3월 20일 일본의 오사카 학무국이 재일동포를 교육하는 모든 교육 기관에서 조선말로 교육을 하지 못하도록 조치를 내렸는데, 이에 대해 그가 강력히 항의하는 글을 <조선중앙일보>에 게재하였다. 그의 우리 말글 인식이 여기에 잘 나타나 있다.
“말과 글은 한 민족의 피요, 생명이요, 혼이다. 우리는 지나간 마흔 해 동안 저 잔인 무도한 왜적이 우리의 귀중한 말과 글을 이 땅덩이 위에서 흔적까지 없애기 위하여 온갖 독살을 부려 온 것을 생각만 하여도 치가 떨리고 몸서리가 쳐진다.(중략)동포여! 우리가 뭉치어 우리의 아름다운 말과 글을 피로써 지킬 때는 온 것이다. 우리의 생명, 우리의 혼을 영원히 지키어 우리의 만대 자손에게 깨끗하게 전하여 줄 우리의 보물을 저 강도 왜적에게 다시금 백주에 빼앗기고 짓밟히게 하지 말자!”(말과 글을 피로써 지키자! <조선중앙일보> 1948. 4. 10)
▷ 박용규 한글학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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