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연합뉴스) 정주호 특파원 = 78년 역사의 홍콩 공영방송 RTHK(香港電台)가 홍콩 반환 이후 가중되는 중국의 압력과 통제 속에 지난한 싸움을 벌여가고 있다.
홍콩 정부 소속 방송국이면서도 중국 및 홍콩 정부에 대한 가차없는 비판과 독설로 '홍콩의 BBC'라는 별칭을 갖고 있는 RTHK의 웹사이트는 중국에서 접속이 차단돼 있다.
지난 1999년과 2002년엔 대만독립 지지자인 뤼슈롄(呂秀蓮) 대만 부총통에 관해 보도하면서 중국의 항의를 받았고 둥젠화(董建華) 전 행정장관 시절엔 홍콩 정부를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정권과 비교하는 보도로 분노를 사기도 했다.
이런 RTHK에 대해 최근 홍콩에서 공영방송 체제 개편 논의가 시작되면서 중국이 서서히 손을 뻗쳐오고 있다.
한 친중국계 정치인은 RTHK의 역할 재정립을 촉구하며 RTHK가 정부비판을 멈추고 대중들에게 정부정책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정부와 대중간의 가교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실상 중국 및 홍콩 정부의 시책과 의도를 충실히 반영하는 '어용방송'이 돼줄 것을 요구한 것이다.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IHT)은 12일 홍콩 정부 공영방송검토위원회가 RTHK의 장래에 대한 검토를 시작한데에는 '숨겨진 의도'가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RTHK는 최근 웹사이트를 통한 성명에서 "방송의 임무는 자유롭고 속박 없는 견해의 표출을 위한 장(場)이 되는 것"이라며 "중국의 언론통제 정책에 대한 우려 속에 수많은 민주인사와 언론 종사자들은 RTHK가 앞으로도 계속 자유롭고 속박 없는 상태로 남게 될지 지켜보고 있다"고 밝혔다.
홍콩기자협회도 최근 'RTHK 점령'이라는 제하의 성명을 통해 "중국 당국이 홍콩 언론매체에 중국식 사고방식을 강요하는 상황 속에서 RTHK는 지난 20년간 홍콩의 언론자유를 상징해왔다"며 진정한 공영방송 체제로 개편할 것을 촉구했다.
홍콩기자협회장을 지낸 민주파 에밀리 라우(劉慧卿) 의원은 "상황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며 "홍콩 정부가 중국으로 주권이 반환된 이후 지속적으로 표현의 자유를 억제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RTHK에 대한 통제 움직임 외에도 언론매체의 홍콩 및 중국 정부 비판에 대해 위협이 가해지거나 배후에서 압력이 행사되는 경우도 많다고 그는 주장했다.
특히 지난 2003년 7월1일 홍콩에서 50만명이 참가한 민주화 시위가 벌어진 이후 언론에 대한 압력이 더욱 강화되고 비판적인 매체에 대해선 취재가 봉쇄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RTHK에 대해 별도의 위원회를 구성, 정부로부터 독립된 법정 기업으로 만들어 자금운영과 편집보도권을 보장해주자는 과거의 개혁안을 들고 나왔지만 홍콩 정부측은 이 안이 오히려 편집권 통제를 가져올 수 있다며 반대하고 있다.
중국이 비판적인 언론매체에 대해 정간, 기자 해고 등을 통해 재갈을 물리거나 당국의 보도지침에 따르지 않는 기자를 처벌할 수 있도록 법제화하는 등 내부 언론통제를 가속화하는데 이어 이제는 홍콩 언론에 대해서도 통제의 손을 뻗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