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상하이, “옛 영광을 되살려라”… 그러나 만만디
황푸강변의 둥팡밍주(동방명주)는 상하이 밤하늘에 빛났다. 홍콩을 뜻하는 ‘동쪽의 빛나는 구슬’은, 아시아의 금융중심이라는 상하이의 꿈을 대변한다. 둥팡밍주를 비롯해 100채가 넘는 수십층의 마천루들이 빽빽히 모여있는 곳이 푸동의 뤼지아쭈이 금융무역구다. 뉴욕 맨해튼, 런던 시티와 같은 금융집적지를 표방할만도 한 것이, 증권거래소, 선물거래소, 황금거래소, 다이아몬드거래소 등 4대 거래소는 물론이고 인민은행 상하이총부와 3개 감독기구의 상하이분국, 350여개의 국내외 금융기관, 4천여개의 법률·회계 자문회사가 밀집해 있다. 그리고 그 가운데 둥팡밍주보다 더 높은 101층(492m)짜리 상하이 푸둥의 랜드마크를 예정한 국제금융센터빌딩이 2008년 완공을 목표로 건설되고 있다.
1992년이었다. 중국 정부는 상하이 푸동 지구를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금융을 비롯한 4개 부문의 중심지로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2002년 상하이시는 금융공작회의에서 2020년께 아시아 국제금융센터로 키우겠다는 3단계 추진 일정인 ‘싼부저우 전략’을 발표했다. 2005년 1단계 ‘기초 마련’을 마무리하며, 2010년까지 2단계 ‘골격 형성’ 전략으로 상하이시의 금융업 비중을 11%로 늘리는 등 금융시장 확장을 목표로 제시했다. 2020년 목표는 아시아태평양지역의 금융허브로 국제 자본의 집산·거래지를 건설하고 글로벌 금융센터 건설을 추진한다는 것이다.
2020년께 국제자본 집산지 목표
외환 자유거래 등 숙제도 산더미
마침 올해는 중국이 국제무역기구(WTO) 가입시 양허한 금융시장 개방조처를 마쳐야 하는 해다. 그래서 시장개방과 더불어 주식시장의 비유통주(상장기업 지분 중 주식시장에서 거래가 이뤄지지 않는 정부 보유 지분으로, 전체 주식의 3분의 2에 이름) 개혁을 진행하고 있으며, 자산운용 규제완화, 금융기관 자본 확충 등 시장개혁 조처를 추진하고 있다.
빠른 속도로 자본시장 개방이 준비되고 있는 듯하지만, 금융허브 완성을 위해선 아직 해결해야할 난제들이 수두룩한 것이 현실이다. 케지안 차오 상하이증권거래소 국제발전부 부총감은 “자본시장 개방 전에 제도정비를 우선해야 한다”며 “외환의 자유 거래 즉 태환의 문제가 개방에 앞서 해결해야할 문제”라고 말했다. 3대 금융업 가운데 은행과 보험에 견줘 증권 쪽이 상대적으로 덜 개방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차오 부총감은 “여러 문제들을 푼 뒤 정부에서는 외국인의 증권사 지분 보유 상한선인 33%를 순차적으로 49%까지 풀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면서도 “일정이 구체적이진 않다”고 말했다. 국유은행의 부실채권 문제도 자본시장 개방에 앞서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외국계 증권사 관계자는 “중국은 현재 4대 국유은행(중국·공상·건설·농업)의 부실채권을 해결하는 게 가장 우선적인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상하이는 느긋했다. 막대한 경제 성장 여력을 가진 중국 국내에서 단연 상하이의 경쟁력이 가장 강하며, 상하이와 주변 지역의 실물경제 성장률이 매해 11~15%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큰 잇점이다. 상하이와 주변 장쑤·저장성(장강삼각주 지역)의 총생산액은 중국 전체 총생산의 25%에 이른다. 외국계 금융자본이 중국 경제의 앞날을 내다보고 미리 상하이로 진출하는 것도 커다란 기회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상하이는 사회주의 혁명 이전 누리던 국제금융중심지 자리를 되찾으려 절치부심하고 있다. 하지만 금융허브를 향한 ‘무한 경쟁’을 말하는 상하이 금융인들의 표정은 ‘만만디’의 여유로 가득차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