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5년 전인 2001년 여름 체코 청년 라다 제리니크는 스웨덴 예테보리의 한 쓰레기통에서 더러운 여행가방 하나를 주웠다. 웬 여행객이 소매치기나 좀도둑에게 도둑맞은 가방이었다. 가방 속에는 22통의 필름만 들어 있었다. “필름에 무엇이 찍혔을까.” 궁금해진 제리니크는 체코로 돌아와 필름을 인화했다. 756장의 사진 속에는 검은 머리칼의 낯선 동양인 6명이 담겨 있었다. 그들은 유럽 곳곳의 관광지와 절경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이들은 아름다운 여름 휴가의 추억을 잃어버렸구나.’ 프라하 영화예술학교에 다니던 루씨가 친구를 통해 제리니크가 주운 필름 이야기를 들었다. 이들은 사진 속 동양인들의 ‘잃어버린 휴가의 추억’을 찾아주자는 데 의기투합했다.
먼저 사진을 본 체코의 화교들은 “생김새와 옷차림으로 볼 때 100% 중국인, 그 중에서도 북방 지역 사람”이라고 장담했다. 루씨는 2003년부터 사진 속 풍경을 찾아 그들의 행적을 밟기 시작했다. 또 이 과정을 모두 촬영했다. 동양인들은 독일을 거쳐 노르웨이와 스웨덴을 방문했다. 루씨 일행이 3년 동안 쫓은 동양인들의 행적은 5000㎞가 넘는 긴 여정이었다.
이들은 노르웨이의 피오르드에서 찍은 사진에서 중요한 단서를 찾았다. 사진 속 동양인이 유럽인 부부와 함께 사진을 찍었는데, 옆에 있는 캠핑카의 차 번호를 확인할 수 있었다. 독일 렌터카 차량 번호판이었다. 루씨는 렌터카 회사를 통해 당시 차를 임차한 독일인 부부를 찾아냈다. 그 부부는 사진 속 동양인이 중국인이었다고 확인해주었고, 사진을 찍었던 장소도 알려주었다. 루씨 일행은 그곳을 찾아가 중국인들이 묵었던 호텔까지 찾아냈다.
그러나 호텔은 ‘고객 비밀 보호’를 이유로 그들의 신상과 연락처를 알려주지 않았다. 대신 호텔은 아시아지역 고객에게 보내는 책자에 루씨 일행이 중국인들을 찾는 사연을 전하는 편지를 동봉하도록 허락했다. 영화 전공자인 루씨는 그동안 찍은 영상으로 기록영화를 제작했다. 루씨는 그 기록영화와 6명의 중국인 사진들을 모아서 지난해 7월 프라하에서 ‘잃어버린 휴일-낯선 중국 여행자 찾기’라는 전시회를 개최했다.
이것이 중국에 알려지면서 중국 국영 방송국인 CCTV는 지난 14일 ‘360도’라는 프로그램에서 1시간 동안 루씨 일행의 사연을 소개했다. 방송 직후 ‘사진 속 동양인’이 방송국으로 전화를 걸어왔지만, 방송사는 이들의 신분을 공개하지 않았다. 하지만 루씨는 곧 이들을 만나 그들의 ‘잃어버린 휴가의 기억’을 전달해줄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