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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톈안먼(天安門) 민주화 운동 23주년을 맞아 홍콩의 빅토리아공원에서 십 수만명의 시민들이 당시 톈안먼 광장을 찍은 대형 사진을 배경으로 촛불시위를 벌이며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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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호 출범 후 '한때 기대감"…서방 전문가들 "재평가 요원"
'톈안먼(天安門) 사태', '톈안먼 민주화 운동', '반혁명 폭란', '톈안먼 동난', '1989년의 정치적 풍파'….
모두 1989년 6월4일 중국 베이징의 톈안먼광장에서 벌어진 대규모 학생운동과 이에 대한 중국당국의 무력진압을 지칭할 때 사용되는 표현들이다.
서방국가들과 중국 내 민주화 세력은 이 사건이 사회·정치적 모순에 정면으로 맞선 민중운동이라는 점을 기려 '민주화 운동'으로 부르지만, 중국정부는 여전히 '폭란', '풍파'로 지칭한다.
이는 당시 덩샤오핑(鄧小平)을 중심으로 지도부가 '반혁명 폭란'으로 규정한 데 따른 것이다.
'중공중앙당사'는 여전히 이 사건을 "80년대 말 자산계급 자유화 사조가 일어나 자유화 분자들이 자산계급의 민주·자유를 선전했고 반당·반사회주의 활동을 전개했다…극소수 자유화 분자들은 이 기회(후야오방(胡耀邦) 총서기 서거)를 틈타 추도를 구실로 반당·반사회주의 활동을 전개했다"고 서술한다.
다만, 근년 들어 중국정부가 톈안먼 사건을 대외적으로 '폭란'이라고 표현하는 경우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대신 '정치적 풍파'라는 다소 순화된 듯한 표현을 사용한다.
정치개혁을 추진하다 실각함으로써 톈안먼 사건의 도화선이 된 후야오방에 대해 중국 관영매체들이 '개혁개방의 선구자'라고 표현하는 등 비공식적으로나마 복권을 기정사실화한 것 역시 주목해볼 만한 변화다.
이런 몇몇 현상이 톈안먼 사태 자체에 대한 중국정부의 '인식변화'를 반영한 것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수십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전체 중국사회의 시각도 조금씩 바뀌는 것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시진핑(習近平) 체제의 출범이 재평가 기대감을 높여놓은 것도 사실이다.
이 사건에 대한 정치적 책임에서 자유로운 시진핑 체제는 역대 어느 지도부보다 재평가에 적극적일 수 있다는 평가 속에 임기를 시작했다.
실제로 시 주석은 고강도 반부패를 기치를 내걸고 "권력을 새장에 넣어야 한다"며 법치·민주를 강조하는 등 오랫동안 민주화 세력이 요구해온 민주주의 제도화 요구에 호응하는 듯한 모양새를 취했다.
올해 초에는 중국대륙에서 자오쯔양(趙紫陽) 전 총서기 관련 소식에 대한 인터넷 검색이 일부 허용됐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자오쯔양은 민주화 요구에 동조하고 무력진압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실각한 뒤 죽을 때까지 연금상태로 지낸 톈안먼 사태의 아이콘 같은 인물이다.
그러나 시 주석 집권 2년차를 맞은 현재 기대감은 실망감으로 바뀐 분위기다.
재평가의 핵심은 25년 전 시위대가 요구했던 민주화 요구가 정당했다는 점을 인정하고 자오쯔양을 복권하는 데 있지만 시진핑 체제 역시 이런 부분에서는 '요지부동' 태도를 견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외신 보도에 따르면 시 주석은 취임 직후인 지난해 4월 '서구식 입헌 민주주의', '보편적 가치로서의 인권', '언론의 독립과 시민사회에 대한 서구식 개념' 등 7가지를 체제에 대한 도전 요소로 규정한 문건을 당 간부들에게 내려 보냈다.
최근 유럽순방 과정에서는 공개 강연을 통해 중국 안팎에서 제기되는 민주화 요구들을 겨냥, 의회제·다당제 등을 '중국에서는 과거 실패했던 제도'라고 못박으며 "중국은 다른 국가의 정치제도와 발전방식을 그대로 모방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시 주석은 당시 '귤이 회남(淮南)에서 나면 귤이 되지만, 회북(淮北)에서 나면 탱자가 된다(橘生淮南則爲橘 生于淮北爲枳)'는 이른바 '탱자론'을 끌어들였다.
이 같은 시 주석의 발언으로 미뤄볼 때 정치체제 개혁, 보편적 인권, 언론자유 등의 가치를 동력으로 해 추진됐던 당시 학생운동에 대한 재평가가 시진핑 체제에서도 이뤄지기 어렵다고 서방 전문가들은 전망하고 있다.
중국 지도부에게 있어 톈안먼 사태에 대한 재평가 문제는 '정치적 딜레마'라는 해석도 존재한다.
톈안먼 사태를 재평가한다는 것은 역대 당 지도부의 잘못을 들춰내는 작업이 될 수밖에 없고 이는 결국 당의 정통성과 순결성에 상처를 입혀 스스로 당의 권위를 떨어트리는 '치명적 실수'가 될 것을 우려한다는 것이다.
베이징의 한 외교소식통은 최근 '신공민(新公民) 운동'을 주도해온 시민운동가 쉬즈융(許志永) 변호사가 당국에 체포돼 4년형을 선고받은 점을 거론하며 "시 주석의 행보는 여러모로 기존의 (공산주의) 체제를 강화하는 쪽으로 움직이고 있다"면서 "톈안먼 사태에 대한 재평가는 여전히 요원해 보인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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