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한 권 공감 한 줄]
세계가 극찬한 얀 마텔의 ‘파이 이야기’
지금의 나를 버티게 하는 나의 적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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얀 마텔 지음 | 공경희 옮김 | 작가정신 | 2013.11. |
부모님이 운영하던 동물원 식구들과 함께 모든 가족이 인도를 떠나 캐나다로 향하던 중 이들을실은 배가 폭풍우에 침몰하면서, ‘파이’라는 14살 소년의 227일간의 긴 항해 이야기는 시작된다. 작은 구명보트에 겨우 살아남은 이들은 파이와 하이에나, 오랑우탄, 얼룩말 그리고 리차드 파커. ‘리차드 파커’는 부모님 동물원에서 사육되던 뱅갈 호랑이의 이름이다.
하이에나와 오랑우탄, 얼룩말은 보트 위 좁은 공간에서 약육강식의 간단한 먹이 사슬을 반전 없이 마무리하고 리차드 파커와 파이는 단 둘이 남게 된다. 아무 것도 없는 캄캄한 어둠 속, 앞에도 끝이 없고, 위도 아래에도 끝이 없는, 희망이라고는 눈꼽 만큼도 찾아 볼 수 없는 그야말로 새카만 하늘과 바다만 맞닿아 있는 곳. 뱅갈 호랑이 한마리와 함께 그 어둠과 추위와 배고픔과 갈증을 버텨야만 했다.
리차드 파커에게 보트를 빼앗겨버린 파이는 그가 잔인하게 새끼 양을 잡아 먹던 장면을 떠올리며, 그의 섬득함에 몸서리를 치고, 순간순간 밀려드는 쓰나미 같은 두려움으로 그의 존재에 대해 갈등을 하게 된다. 보트를 찾아야만 했던 소년은 결국 호랑이를 길들이기로 다짐한다.
물고기를 잡아 한 마리씩 던져주기도 하고, 호루라기를 불어 겁을 주기도 하며 훈련을 시작한다. 배멀미에 쇠약해져 있던 리차드 파커는 차차 던져주는 물고기를 받아 먹는 것에 익숙해 지고, 파이는 간혹 리차드 파커를 길들이는 재미에 망망대해의 표류를 잊기도 한다. 둘은 이미 표류 속에 동지가 되는 반전을 맞으며, 서로를 의지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그렇게 태풍을 맞기도 하고, 날치 떼의 비행에 몸을 새우기도 하며, 바다에서의 227일 표류는 멕시코 어느 해안에 다다라 막을 내린다.
파이는 사람들에게 발견되어 안겨가면서 저 멀리 숲 속으로–뒤 한번 돌아보지 않고-사라지는 매정한 리차드 파커를 바라보며 하염없이 오열하고, 그렇게 이 소년의 표류기는 해피 엔딩이 된다. 필자도 책을 덮으며 흘러내리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리차드 파커가 주는 여운이 너무도 컸던 이유다.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 ‘리차드 파커’가 가장 기억에 남는 이유가 있다. 파이라는 소년은 이제 겨우 14살에 불과하다. 한 순간의 사고로 가족을 잃고 홀로 살아 남아 200일이 넘는 긴 어둠 속에서 지독한 외로움과 싸워 생존하기에는 너무도 어린 나이이다. 묻고 싶다. 이 소년에게 진정 두려웠던 것은 끝없이 펼쳐진 망망대해에서 언제 닥쳐 올지 모르는 죽음이었을까, 아니면 서슬퍼런 눈으로 먹잇감을 찾아 한치 앞에서 어슬렁거리는 뱅갈 호랑이 리차드 파커였을까.
어느 재밌는 리서치를 통해 읽은 글이 생각난다. ‘세상 90%의 여자들은 죽음보다 눈 앞의 거미를 무서워 한다는…’
다시 생각해 보면, 리차드 파커 없이 그 무서운 바다 한 복판에 홀로 남겨졌다면 그 소년은 과연 끝까지 살아남아 다시 땅을 밟을 수 있었을까. 이토록 아이러니한 둘의 관계를 되새기며, 지금의 나를 버티게 하는 나의 적은 무엇인가. 지금의 나를 발전하게 하는 나의 아킬레스는 무엇인가, 결코 작지 않은 고민을 하게 된다.
숙적에게 도망 다니며 더욱 질겨진 생명력으로 긴 여정을 버티는 러시아 청어처럼, 지금 여러분 곁에 이처럼 멋진 근육질의 삶을 선사하는 ‘리차드 파커’는 있는지…. 한번쯤 되돌아보는 계기를 가질 수 있기를 기원하며, 이렇게 위대한 베스트 셀러를 읽을 기회를 준 나의 친구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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