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아침 7시쯤 가까운 중국 재래시장(农贸市场)을 향해 출발한다. 애마인 자전거를 타고 7분 남짓 거리의 시장으로 가는 아침 길은 쾌적하기 그지없다. 차갑게까지 느껴지는 가을 아침 공기를 맘껏 누린다. 불타는 금요일 밤의 후유증인지 그 시간의 홍췐루를 지날 때면 코를 찌르는 음식쓰레기 냄새가 역겨울 때가 있어 다른 길로 가는 버릇이 생겼다.
시장 입구의 해산물 코너에 꽃게가 지천이다. 입구에 있는 살아 움직이는 값싼 양식 꽃게가 아무리 유혹해도 자연산 작은 꽃게의 맛엔 비교할 수 없었는데 오늘따라 자연산 꽃게가 양식보다 큰 걸보고 깜짝 놀랬다. 한국 꽃게까지 다 잡아온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스치면서 제철인 꽃게를 무시할 수 없어 아침은 꽃게탕으로 결정했다. 온 가족이 감자를 좋아하는 지라 한국에서 남작 종류로 불리는 분가루가 많은 감자 종류를 골라 한 가득 샀다.
처음 중국에 올 때만해도 가격 흥정을 했었는데 요즘은 과하다 싶은 가격이 아니면 뒷 마오만 털고 산다. 그래 서너 곳의 가격을 먼저 둘러 보는 습관이 생겼다. 버섯 코너에서 일주일 먹을 표고버섯을 사다 기다리던 햇밤을 발견했다. 지금 이맘때의 햇밤은 아직 단 맛은 없지만 까 놓으면 생으로도 맛있고, 찌면 찐대로 구우면 구운대로 맛있어 즐기는 간식이다. 생각보다 달았다. 다음주엔 아직 이른지라 비싼 감은 있지만 두 배로 사와야겠다.
언젠가부터 브로콜리보다 우리집 아이들에게 더 인기가 있게 된 콜리프라워, 촘촘한 종과, 넓게 나뭇가지처럼 퍼진 두 종류가 있는데 후자가 요리할 때 편하고 감칠맛이 있어 큰 걸로 두 개나 샀다. 겉에 금새 까맣게 곰팡이 같은 것이 피므로 가자마자 요리하는 채소다. 깡치는 우리집 pet, 기니피그의 몫이다. 마늘 가게에 가니 부지런한 주인이 마늘을 수북히 까 놓았다.
집에서 급히 요리할 때 마늘 까는 시간이 아까워 조그만 소쿠리 한 바구니를 샀다. 마트에서도 깐 마늘을 사 봤지만 마트에서 산 포장된 마늘은 냉장고에서 꽤 오랜 시간이 지나도 그대로라 찜찜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내가 까 놓은 마늘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싹이 자라기도 하고 곰팡이가 생기기도 하는데 참 이상하다. 그래 주인장이 막 깐 시장의 신선한 마늘을 좋아한다.
토마토 몇 개, 호박 2개, 양파 서너 개, 콩신차이 한 다발, 노란 길다란 단호박 한 덩어리를 사고선 입구의 유일한 소고기 가게로 향한다. 가까운데서 소고기와 삼겹살을 사 먹다 몇 번 의심쩍은 상황을 맞이했다. 어떤 집 삼겹살은 굽고 있는데 살과 비갯살 부분이 불판 위에서 저절로 찢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다른 집에서 장조림용 소고기를 큰 덩어리로 샀는데 얼마 삶지 않아 세 도막으로 저절로 분리되어 있었다. 유독 선홍빛의 선명한 쇠고기를 보면 차마 말도 못하고 사지 않고 돌아온 적도 있다. 오랜 중국 생활로 시장 입구의 쇠고기는 물소라는 인식이 박혀 있던지라 꽤 오랫동안 시장의 쇠고기를 사지 않았었다. 언제부터인가 중국인들도 돼지고기 구입하듯 쇠고기를 즐겨 구입하는 것을 보며 나도 한참을 구경해 보았다.
나이든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손자, 손녀를 위해 100원이 넘는 고기를 주저 없이 구입하는 것을 보며 시장의 쇠고기가 물소가 아님을 확신하게 되었다. 20년이 다 되어가며 중국의 재래시장도 변하는데 나만 모르고 있었다. 다시 옛 기억을 떠올려 안심과 등심을 중국어로 이야기하며 일주일 분량의 쇠고기를 사온다. 신선하다, 주변 마트 보다 훨씬 싸다, 그리고 맛있다, 도톰하게 썰어 대강 스테이크를 해 주어도 맛있다 한다.
중국 재래시장에서 물들인 조기를 산 적도 있다. 조그만 액수를 흥정하다 감정이 상한 기억도 있다. 이제는 주부 몇 단이 되어 그럴 일이 없지만 집 가까이에 널린 마트의 편리함에 젖다 보니 가끔은 가까운데서 해결하고픈 유혹을 받는다. 가격 때문이기도 하지만 주부로서의 생활 감각을 잃지 않기 위해 재래시장을 가곤 한다. 아침 일찍 가야 하니 부지런을 떨 수 밖에 없고 제 철 물건이 무엇인지, 시세가 얼마인지 감을 잡을 수 있다. 시장 안 과일코너는 결코 싸지 않다. 시장에 가서 다른 신선한 야채와 생선 사기도 바쁜데 과일을 사는 적은 거의 없다. 집 주변 과일 과게와 가격이나 상품의 차이가 거의 없어서다.
과일 가게 아저씨의 눈총을 뒤로 하고 시장을 나서며 양 손 가득한 물건을 자전거 앞뒤로 고정하고 집을 향해 달린다. 머릿속에 아침에 할 요리 제목이 시원한 가을 바람과 함께 스친다.
Renny(rennyh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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