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리리펑(粒粒0)을 아십니까.’ 중국 상하이(上海) 까르푸 매장의 과자 진열대에 수북하게 쌓여 있는 인기 상품.
크라운제과 ‘죠리퐁’의 중국식 이름이다. ‘알알이 통통 튀어 오른다’는 뜻이다.
죠리퐁의 생김새와 바삭바삭한 특성에 기막히게 어울린다. 리리펑은 요즘 상하이의 대형 할인점에서
판매량 선두를 다투고 있다. 잘 지은 이름은 브랜드의 미래를 결정하는 중요한 자산이다. 프랑스계 할인점
까르푸는 한국에서는 짐을 쌌지만 중국 시장에서는 여전히 절대강자다. 고개를 끄덕거리게 하는 절묘한 네이밍으로 중국인과 한층 더 가까워진 브랜드다. 까르푸의 중국 이름은 ‘자러푸(家樂福)’.
집안이 화목해지고 복이 온다는 데 찾아오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최근 한류 바람을 타고 가속도를 내고 있는
한국 기업의 중국 진출 전략에서도 브랜드 네이밍은 늘 중심에 서 있다.》
○ 이름이 비즈니스의 시작이다
이미 국내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킨 두산주류BG ‘처음처럼’의 중국 브랜드는 ‘추인추러(初飮初樂·첫 맛과 첫 기쁨)’.
6월 중국 출시를 앞두고 3개월 넘게 ‘작명(作名)’에 매달렸다. ‘추롄(初戀)’ ‘추쉐(初雪)’ ‘추신(初心)’ 등 수백 개의 중국어 조합이 후보에 올랐다. 추인추러는 앞서 진출한 산 소주의 판매량을 3배 가까이 앞지르면서 ‘이름값’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중국에서 네이밍이 중요한 것은 시장의 특수성 때문이다. 중국 정부는 상호를 등록할 때 중문 브랜드를 의무적으로 제출하도록 하고 있다.
삼성은 중국에서는 기업 브랜드 위주의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치파이(기派·기파)’로 불리는 지펠을 빼고는 삼성이라는 명칭 아래 휴대전화, TV, 에어컨 식으로 이름을 붙였다.
SK의 중국식 브랜드는 ‘아이쓰카이(愛思開)’로 중국 지역에서 필요한 경우에만 이 명칭을 쓰고 있다. CJ와 GS는 각각 ‘시제(希杰·희망과 빼어남)’와 ‘자스(佳施·아름다움을 베풀다)’다.
LG의 경우 초콜릿폰은 ‘차오커리(巧克力·초콜릿)’, 휘센은 ‘칭신(淸新·맑고 신선함)’, 디오스는 ‘디야쓰(帝雅斯·황제의 우아함)’다.
파리바게트는 ‘파리의 달콤함과 행복을 준다’는 콘셉트의 ‘바리베이톈(巴黎貝甛)’이 됐다. 토종 외식 브랜드 놀부는 ‘러보(樂伯·즐거운 아저씨)’를 앞세워 다음 달 중국에 진출한다.
2002년부터 중국 진출 국내기업의 브랜딩 컨설팅을 담당한 가톨릭대 박종한(외국어문학부) 교수는 “중국은 아직도 영어 사용률이 낮은 데다 한자의 의미를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며 “이런 특수성을 무시하면 소비자와의 커뮤니케이션에 심각한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글로벌 브랜드조차 중국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상당한 홍역을 치러야 했다. 코카콜라의 초기 중국식 브랜드는 ‘커우커커우라(口渴口辣)’. 발음은 비슷했지만 목이 마르고 목이 맵다로 해석돼 부정적인 반응이 쏟아졌다. 결국 지금의 ‘커커우커러(可口可樂·입에 맞고 즐거운)’로 바뀌었다.
중국에서 ‘이마이더(易買得)’로 불리는 이마트는 귀에 쏙 들어오는 비슷한 발음과 호감을 주는 의미 덕택에 좋은 이미지를 얻었다. 저렴하고 합리적인 가격으로 소비자에게 이익을 돌려준다는 뜻이다.
○ 중국의 문화와 감정을 담아라
국내 기업들은 브랜드에 중국 고유의 문화를 담으려는 적극적인 브랜드 전략도 구사하고 있다.
플라스틱 밀폐용기 제조사인 락앤락(Lock&Lock)의 중국식 브랜드는 ‘러커우러커우(樂구樂구)’. 즐겁게 닫는다는 뜻이다.
이 회사는 2004년 중국에 진출하면서 차를 즐겨 마시는 현지인들의 생활 습관에 주의를 기울였다. 중국인이 자주 사용하는 차 용기는 유리병이라 깨지기 쉽기 때문에 보관과 휴대가 어려웠다. 락앤락의 플라스틱 용기는 말 그대로 편리하고 즐겁게 닫는 인기 상품이 됐다.
농심의 신라면은 매운 음식을 잘 먹지 못하는 중국인의 ‘입맛’에 정면으로 도전했다. 농심이 내건 슬로건은 ‘매운 것을 먹지 못하면 사내대장부가 아니다’. ‘만리장성에 와보지 않은 자는 사내대장부가 아니다’는 마오쩌둥(毛澤東)의 말을 패러디한 것이다. 신라면은 다른 제품에 비해 비싸고 맵지만 멋진 남자가 되기 위해서는 꾹꾹 참고 먹어야 하는 상품이 됐다.
패션 브랜드 신원 Si의 ‘시이(熙伊)’는 ‘주위를 밝게 빛나게 하는 그녀’라는 시경(詩經)의 한 구절을 따온 것이다.
기아차의 ‘첸리마(千里馬)’는 2002년 중국에 선보인 뒤 한국 차 돌풍의 주역이 됐다. 브랜드컨설팅 업체 ‘메타 브랜딩’의 김주리 팀장은 “중국인이라면 천리마에 얽힌 수많은 사연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며 “천리마의 이미지와 자동차, 중국의 육상 영웅 류샹을 모델로 기용한 전략이 제대로 맞아 떨어진 사례”라고 말했다.
현지인들의 감정을 고려해 때로는 기업의 ‘간판’을 포기하는 결단도 필요하다. 초코파이로 유명한 오리온이 1997년 중국에 진출할 때 기업 브랜드는 동양(東洋)이었다. 동양은 중국에서는 민족적으로 거부감이 큰 일본을 가리킨다. 그래서 동양은 수십 년간 사용해 온 기업 명칭 대신 친구라는 의미가 담긴 ‘하오리유(好麗友)’를 내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