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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이야기] 니들이 김밥을 알아?

[2017-11-21, 06:57:18] 상하이저널

나는 아이들 학교행사나 소풍으로 음식을 준비 할 일이 있으면 김밥을 자주 싸곤 했다. 소풍엔 당연히 도시락 싸기도 간편하고, 맛도 있는 김밥이 진리라고 생각했다. 큰아이 초등학교 첫 소풍 때 선생님 김밥까지 싸서 보냈더니, 보내 준 ‘쓰시(寿司)’ 잘 먹었다며 감사의 인사를 전해왔다. 그 후로도 담임 선생님은 김밥을 항상 ‘쓰시’라고 표현하셔서난 기회만 있으면 ‘즈차판쥔(紫菜饭卷)’이라고 부르며, 이것이 쓰시가 아닌 한국의 김밥인 것을 콕 집어 얘기하곤 했다.  큰아이의 김밥을 먹어본 친구들이 집에 가서 얘기를 한 모양인지 학교 행사 때 김밥과 떡볶이를 만들어 달라는 중국엄마들의 요청에 따라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졸업 때까지 나는 우리반 김밥과 떡볶이를 담당했었다. 여러 번의 행사를 통해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떡볶이 유형을 파악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떡볶이는 아무리 해줘도 질리다는 말을 하지 않았던 아이들이 이번 가을 소풍 때 김밥을 싸준다고 했더니, 두 녀석 모두 손사래를 치며 김밥은 싫다며 다른걸 싸달라는 것이다. 왜 소풍만 가면 맨날 김밥을 싸주냐며 두 녀석 다 신경을 곤두세웠다. 나는 언제나 그랬듯이 “한국에선~”이라고 시작하며, 한국에선 소풍도시락으로 모두들 김밥이나 유부초밥을 싸간다고 설명을 했지만, 두 아이 모두 김밥은 너무 많이 먹어 질렸고, 여기는 한국이 아니라 중국이라며 다른 것을 요구했다. 김밥이 질렸다니 기가 막혔다. 난 평생 그렇게 많은 김밥을 먹었어도 아직까지 질리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다. 더욱이 내 김밥은 중국친구들한테도 사랑받던 김밥이 아니었는가! 김밥 맛도 모르는 녀석들! 내심 괘씸했지만 싫다는데 억지로 싸 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혹시나 싶어 포털사이트에 들어가 ‘중학생 소풍 도시락’을 검색했더니 검색어가 이미 뜨는 것이 아닌가! 수많은 블로그를 보면서 내가 중국에 너무 오래 살았음을 새삼 느꼈다. 이제 더 이상 소풍도시락의 진리는 김밥이 아니었다. 소풍을 하루 앞두고 메뉴를 바꾸기도 쉽지가 않아 결국 샌드위치를 주 메뉴로 하고 김밥은 살짝만 곁들였다.  

 

중국친구들은 대부분 도시락을 안싸오거나 간식같이 간단한 걸 싸오는걸 알기 때문에 나눠먹으라고 일부러 많이 싸줬는데, 학년이 올라가면서 나눠 먹는 것도 귀찮아진 모양인지 무조건 조금만 싸란다. 김밥에 대한 아이들의 태도에 서운하기도 하고, 여지껏 도시락이 진화한 줄 도 모르고 김밥만 싸줬던 나의 무심함에 이제 김밥은 쌀 일이 없겠구나 싶었다.  그러다 며칠 전 큰 아이가 친구네 집에 놀러 가기로 했는데 김밥을 싸달라는 것이었다. 사실 이 친구 집은 올해 처음 가는 것은 아니었다. 작년에 초대를 받았을 때, 나는 아이 손에 김밥과 유부초밥을 한아름 들려 보냈는데 하나도 먹지 않고 그대로 가지고 온 적이 있었다. 왜 안 먹고 그대로 가져왔냐고 물으니, 꺼내 놓는걸 깜박했단다. 그날 나는 아이에게 불같이 화를 냈다. 친구네 집에 처음 초대받아 가는 거였는데, 나를 간식하나 준비 안해서 보낸 무정한 엄마로 만들어 버려서 너무나 화가 났었다. 정말 꺼내놓는걸 잊어버렸냐고 몇 번을 묻자, 우물쭈물하는 게 분명 잊어버려서가 아니었다. 김밥을 꺼내 놓는 게 창피했냐고 물었더니 대답을 못한다.

 

베이징 유학시절 단무지 구하기 힘들어서 한국에서 하나 보내주면 아껴먹곤 했다. 이젠 한국이나 여기나 없는 재료도 없고, 못 구하는 재료도 없고, 더욱이 김밥은 흔하디 흔한 음식이 됐다. 그래도 내가 만든 김밥은 파는 것 하고는 완전히 다른데….

 

그런데 이번엔 큰 아이가 먼저 김밥을 싸달라니 의아할 수 밖에 없었다. 웬일로 김밥을 싸달라고 하는지 물었더니, 그 친구 엄마가 음식을 하나씩 싸오라고 주문을 했다는 것이다. 작년에 아무것도 안 보낸 걸로 알고 있는 그 친구 엄마가 올 해는 아예 각자 먹을 것을 준비해오라고 한 모양이다. 작년 일도 있고 해서 나는 김밥에 떡꼬치까지 모두가 넉넉히 먹을 만큼 충분히 싸서 보냈다.  나중에 그 엄마가 맛있게 잘 먹었다며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사진을 몇 장 보내줬는데, 아이들이 둘러앉은 식탁엔 내가 보낸 음식밖에 없었다. 큰아이한테 그날 음식 먹은 게 이게 다냐고 물었더니, 다른 친구들은 아무것도 안싸왔단다. 초대받은 친구들은 그렇다 해도, 집주인도 아무것도 준비안하다니, 미국엄마들은 다 그런건지…  조금은 의아했지만, 우리아이들에게 천대받던 내 김밥이 그날은 화려한 주인공이 됐으니, 그것만으로도 나는 기쁨을 느꼈다. 그에 힘입어 나는 오늘 또 무를 한아름 사다가 단무지를 담갔다.

 

반장엄마(erinj1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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