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연합뉴스) 정주호 특파원 = 북한이 핵실험 강행을 앞두고 중국까지 속였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중국은 또 북한의 핵무기가 궁극적으로는 중국을 겨냥하지는 않을까 신경질적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홍콩 시사주간지 아주주간(亞洲週刊) 최신호는 15일 중국이 북한의 핵실험으로 받은 엄청난 충격을 전하며 중국 지도부의 핵사태 대응에 대한 막전막후를 소개했다.
◇ 중국 엄청난 충격받아 = 안드레이 카를로프 평양 주재 러시아 대사는 핵실험 실시 2시간 전 핵실험 실시사실과 배경을 통보받았다. 그러나 중국은 핵실험 단행 20분 전에야 북한으로부터 이를 통보받아야 했다.
북한은 특히 지난해 중국의 최대 명절인 춘제(春節.설) 때 핵보유 선언을 한데 이어 이번 핵실험도 `조화사회' 구축을 논의하던 중국공산당 16기 중앙위원회 6차 전체회의(16기 6중전회) 시기에 이뤄졌다는 점에 중국은 주목하고 있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중국 경축행사에 `악의에 찬 선물'을 보냈다는 것이다.
소식통에 따르면 후 주석을 정점으로 한 당 정치국 상무위원은 6중전회 기간에 임시 긴급회의를 소집, 중앙외사공작영도소조와 외교부 보고를 받고 대책을 토론한 뒤 외교부 발표 성명을 승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 외교부의 신속한 반응과 함께 `제멋대로', `단호히 반대', `강력히 요구' 등 성명의 어조는 50여년 간의 북한-중국 관계에서는 볼 수 없었던 부분이다. 이는 중국이 북한 핵실험에 대한 분노와, 모욕받고 사기당했다는 감정을 여실히 드러냈다는 평가이다.
이런 종류의 외교부 성명은 중앙외사공작영도소조 조장인 후 주석의 비준을 반드시 받아야 하는 사안이라고 이 소식통은 전했다.
중국은 핵실험으로 인해 동북지구에 중대한 환경위협이 되고 동북진흥 전략구상에도 충격을 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이 관계자는 "북한이 고의로 중국인민의 감정을 해치려는 의도가 아니면 일부러 베이징에 시위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 북한에 약점 잡힌 중국 = 최근 중국 고위층은 북한이 중국을 `봉'으로 여기는 것 아니냐는 시각을 갖고 있다.
북한 특수부대는 마구 북-중 국경을 넘어와 중국 영토에서 탈북자들을 체포해가기도 하고 도움이 필요할 때엔 중국에 엄청난 자금과 물자를 터무니 없이 요구한다.
중국 현대국제관계연구소의 한 북한문제 전문가는 "김정일은 실제 중국의 약점을 정확히 짚고 있다"며 ▲중국이 대만과의 양안 문제를 현안으로 갖고 있고 ▲중국이 북한 핵사태에 대해 적극 개입, 역할을 맡고 싶어한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또 ▲중국이 인접국과의 평화 외교노선을 추구하며 안전한 외부환경을 만들고 싶어하며 ▲국가발전 전략을 경제성장에 집중하고 있다는 점도 북한이 보는 중국의 약점들이다.
이 전문가는 "따라서 북한은 중국으로부터 제 마음대로 얻어낼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중국의 경제원조에 대해 전혀 감격스러워 하지도 않고 도리어 적다고 불만을 토로한다"고 덧붙였다.
◇ 베이징을 속인 평양 = 중국의 한 고위관계자는 "우리는 북한의 핵무기 보유 여부를 전혀 파악할 수 없었고 북한의 핵개발 진척 상황을 모르고 있었다"고 털어놨다.
북한의 정보수집을 통해 이를 확인할 수 있었어야 했는데 수년 전 옌지(延吉)시 국가안전국 책임자가 북한 정보당국에 30만달러에 매수되면서 중국의 북한 내 정보망이 하룻밤 새 와해돼 버린 것이다. 그 이후 중국의 대북첩보망은 공백 상태에 놓여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심지어 핵실험 강행 전날인 8일 관영 신화통신이 출간한 `참고소식'은 "북한이 조건부로 핵실험을 중지할 것으로 전해졌다"는 내용의 보도를 전하기도 했다.
'세계와 동북아 평화포럼'의 장성민 대표가 북한의 핵실험 임박설에 대해 북한이 '그렇지 않다'는 입장을 중국측에 전하면서 미국과의 직접 대화가 재개될 경우 핵실험 준비 중단을 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을 중국에 통보했다는 것이다.
이 보도가 사실이라면 북한은 핵실험 전날까지도 중국을 속였다는 얘기가 된다. 북한은 허허실실 작전 끝에 하루 만에 옌지에서 불과 137㎞, 러시아 국경에서 185㎞, 한국과 262㎞ 떨어진 지점에서 핵실험을 단행했다.
중국의 한 북한문제 전문가는 김정일은 전세계를 속였을 뿐 아니라 중국에게까지 사기를 쳤다. 이제 사람들은 중국이 뭘하고 있는거냐고 묻는다. 가장 짜증스러운 점은 북한의 핵무기 보유가 실제로는 중국을 겨냥하는 것이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 결국은 중국 겨냥할 수도 = 북한의 핵개발이 표면적으로 미국을 겨냥했다고 하지만 어느 때라도 총구를 중국으로 바꿀 수도 있다는 점을 중국은 내심 우려하고 있다.
베이징의 한 군 인사는 "북중 접경의 영토분쟁은 항상 잠복해 있는 문제"라며 "김정일 심중의 향후 전략적 동맹국은 미국, 러시아, 일본, 중국 순이다. 어느날 갑자기 미국이 북한과의 양자회담 개최에 동의하게 되는 날 북한은 어느 때라도 중국을 팔아치우고 미국의 앞잡이로 제2의 베트남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북한과 미국은 단지 분위기나 시기가 되지 않았을 뿐 모두 뒷거래를 염두에 두고 있는 상황이다. 이번에 북 핵실험에 대해 중국은 전례 없이 강경한 어조로 북한을 비난했지만 미국은 도리어 유연한 어조로 자제와 외교적 해결을 강조하는 수사법을 사용했다. 급한 쪽은 중국이 됐다는 것이다.
중국의 북한문제 전문가 위메이화(于美華)는 "북한이 현 상황은 미국 부시 행정부가 만들어준 것"이라며 "클린턴 행정부의 대북 정책을 계승했더라면 평양이 핵무기비확산조약(NPT)을 탈퇴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북측 핵시설은 국제에너지기구(IAEA)의 감독하에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부시 행정부가 북한의 인권, 금융 문제를 들고 나오면서 핵 문제에 대한 초점이 흐려졌고 따라서 이번 북 핵실험은 6자회담 의장국인 중국의 실패가 아니라 미국의 착오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