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덩중한(鄧中翰·38) 중싱웨이(中星微)전자 회장. 지난해 중국 국영 CCTV가 ‘2005년의 최고 경제인’에 선정한 이후 중국 ‘자주창신(自主創新·자주 혁신)’ 신화의 상징이 됐다. 삼성전자는 최근 미국 최대 이동통신사업자 ‘싱귤러’를 통해 미주 지역에 신제품 휴대전화기 SCH-C417모델을 출시했다. 이 휴대전화기 안에 내장된 주파수 처리기 멀티미디어칩이 이 회사 제품이다. 중싱웨이전자는 멀티미디어칩 반도체 설계에만 집중해 현재 300여개의 독자적인 지적재산권을 확보하고 있다. 현재 멀티미디어칩의 세계시장 점유율은 약 60%. 지난해 11월 나스닥 상장에도 성공했다.
덩 회장은 중국과학기술대학을 졸업하고 UC버클리대에서 전자공학 박사를 땄다. IBM의 TJ 왓슨연구센터에서 반도체 설계 수석연구원으로 일하던 중 1999년 귀국, 유학파 동료들과 중싱웨이전자를 공동 창업했다.
그에게는 또 하나의 이름이 붙어 다닌다. ‘해귀파(海歸派·해외 유학 후 귀국한 사람)’의 선봉. 해귀파는 중국 정부가 중국 경제의 첨단화 전략을 이끌 견인세력으로 타기팅(targeting)하는 인력군단이다. 중국 정부는 제2, 제3의 덩중한과 중싱웨이전자를 탄생시키는 데 혈안이 돼 있다고 보면 크게 틀리지 않는다.
사실 ‘덩중한’의 신화만들기 역시 정부의 작품이다. 중국 신식산업부(정보통신부에 해당)는 그에게 미국 체류를 포기하고 중국에서의 창업을 권유했다. 창업자금 1000만위안(약 12억원)까지 지원했다. 신식산업부 최초의 벤처투자였다.
유학파들에게는 다양한 혜택이 부여된다. 해귀파 기업에 대한 ‘이면삼감(二免三減) 정책’이 대표적이다. 유학생 창업 기업에는 영업 이익이 발생한 해부터 2년간 법인소득세를 면제하고, 그 후 3년간은 50%만 내도록 하는 것이다. 각 지방 정부들도 온갖 ‘당근’을 제시하며 ‘해귀파’ 쟁탈전을 벌이고 있다.
선전(深?)은 매년 3000만위안(38억원)을 유학생 창업자금으로 지원하며, 광저우(廣州)시는 해귀파 창업에 10만위안의 종자돈과 2년간 사무실 무료제공을 내걸었다.
지원책은 효과가 컸다. ‘중국의 실리콘밸리’라 불리는 베이징 중관춘(中關村)에는 창업 붐이 일었던 2003년 상반기 등록 창업기업수가 1만100개에 달했다. 25분마다 기업 하나씩 생긴 셈이다. 해귀파들이 창업한 벤처기업들이 무려 30%에 달했다.
해귀파는 녹색 여권인 이른바 ‘그린 패스(Green Pass)’를 갖고 있다. 이들은 베이징에서 자동차 세금을 한 푼도 안 낸다. 해외에서 학위를 받으면 창업관련 세금도 면제 받는다. 해외파가 회사를 세운다면 정부는 사흘 만에 창업 도장을 찍어주고 대학 소개, 직원 채용까지 세심하게 배려해준다.
중국은 미국에서 유학하고 돌아오는 고급형 인재에게는 상당한 연구 지원금과 스스로 R&D 프로젝트를 운영할 기회도 주고 있다. 능력만 된다면 자신의 연구실에서 한 가지 분야로 10년간 연구할 기회가 주어진다.
미국 유학 중인 중국인은 5만명 선. 미 전체 유학생의 10%다. 중국은 현재 과학기술·엔지니어링 분야 시장점유율 세계 2위다. 2005~2010년 중 300만명의 첨단기술인재를 확보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보다 9배가 많은 숫자다. 중국의 이공계 박사 인력은 연간 14%씩 증가하고 있다. 매년 500만명이 대학을 졸업하며, 이 중 5분의 1이 이공계 출신이다.
해귀파들이 조국의 첨단산업화에 기여하겠다는 의지도 강하다. 덩 회장은 지난해 2월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 주최 ‘아시아 혁신의 현재와 미래’ 포럼에서 ‘중국 혁신(Chinese Innovation)’의 시대를 역설했다. “중싱웨이전자는 중국이 보여주는 미래 혁신의 증거다. 이제는 ‘메이드 인 차이나(made in china)’ 시대에서 ‘디자인드 인 차이나(designed in China)’ 시대로 넘어왔다.”
주중 한국 대사관 신봉길 경제공사는 “40대 중반으로 한층 젊어진 중국 기업인들이 중국 경제성장의 중추로 등장했다”면서 “중국은 이 때문에 끝없이 발전할 수밖에 없는 나라이며, 우리를 압도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물론 중국 정부 의지와 달리 시장 반응은 아직 더 두고봐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과학분야 인력을 빠른 속도로 배출하고 있지만, 독창적인 리더십·유연성이 부족해 고급업무를 담당할 인력은 아직 많지 않다는 것.
소자화(少子化·저출산)의 확산으로 젊은이들은 팀 플레이에 약하고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강하며, 이론 위주의 학습으로 인한 실무경험 부족도 단점으로 거론된다. 그럼에도 단점을 커버하고, 자신감을 회복하면서 엄청난 기술 군단들이 글로벌 기업들을 하나하나 밀어낼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가 늘고 있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