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체(三體) 문제를 들어봤는가? 아마 물리학도가 아닌 일반인에게는 생소한 개념일 것이다. 삼체 문제란 질량과 그에 상응하는 중력을 가진 물체 세 개가 서로에게 작용할 때의 궤도 움직임을 예측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보자. 지구와 태양, 두 개체는 서로의 중력에 이끌려 일정한 움직임을 보인다. 이 움직임은 우리가 익히 아는 공전과 자전을 의미하며, 우리는 수학적으로 이 두 물체가 어떻게 중력을 주고받고, 얼마만큼의 속도로 어느 정도의 거리를 이동하는지 계산해 낼 수 있다. 이것을 이체(二體) 문제라고 일컫는다.
그러나 만일 세 물체를 다루게 된다면 이야기는 달라지는데, 상호작용의 정확한 예측값을 구해내기엔 고려해야 할 변수가 너무 많아진다. 행성 새 개가 서로의 중력에 이끌려 어떠한 궤도를 만들어낸다는 것은 자명하지만, 이 궤도가 정확히 어떠한 모습을 하고 있을지는 계산이 불가능하다.
왜 갑작스럽게 물리학 개념을 소개하고 있을까? 그것은 이번에 소개할 작가의 대표작이 바로 이 삼체 문제와 큰 연관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사람의 이름은 류츠신(刘慈欣, 유자흔)으로, SF 소설 <삼체>로 2015년 휴고 상을 수상하면서 일약 스타 작가의 반열에 이름을 올린 최초의 아시아인이다.
류츠신은 1963년 6월 23일 산서성 양천시에서 출생하였으며, 부모님은 근처의 광산에서 일하는 광부였다. 그는 어릴 적 문화대혁명을 겪으며 중국 근대사의 혼란상을 온 몸으로 느꼈고, 이때의 경험은 훗날 그가 쓴 소설의 한 축을 이루게 된다. 처음에는 작가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고 있었다. 그는 북중국수력발전대학에 입학, 발전소 관리자이자 엔지니어로 커리어를 시작하게 된다. 하지만 발전소에 취직한 이후에도 문학도를 꿈꾸었던 그는 1999년 <초신성시대(超新星纪元)>로 데뷔하게 된다. 그는 첫 작품을 완성한 후에도 꾸준히 책을 출판했는데, 2019년 영화화되어 개봉한 <유랑지구(流浪地球)> 역시 류츠신이 쓴 동명의 단편소설을 원작으로 한 것이다.
그는 2007년 자신의 대표작이 될 <삼체>를 출간하게 되는데, 중국의 어두운 근대사를 재조명하는 동시에 과학자의 죽음에 얽힌 비밀, 그리고 지구의 위기를 다루는 수작으로 인정받았다. <삼체>는 2014년 중국계 미국인 켄 리우가 영어로 번역하였으며, 바로 다음 해 휴고 상 최우수 장편상을 수상한다. 휴고 상은 SF계의 노벨상이라고도 불릴 정도로 권위 있는 상으로, 류츠신은 최우수 장편상을 수상한 최초의 아시아인이다.
류츠신은 집필한 대부분의 저서가 공상과학 계열인데, 그중에서도 현실성과 핀집성을 중요시하는 하드 SF 에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다. 그는 자신에게 영향을 준 작가를 논하며 조지 오웰과 아서 C. 클라크를 꼽았는데, 후자는 하드 SF의 거장으로 꼽히는 대표적인 작가 중 한 명이다. 그의 작품 전반에 중국 근현대사와 관련 있는 요소를 십분 활용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류츠신은 실제로 ‘기이한 공상에조차 뉴스 보도를 보는 듯한 진실성을 부여하는 능력’이 좋은 공상과학 소설을 쓰게 하는 원동력이라고 말한 바 있으며, 허구의 세계관에서의 사실성 추구는 그가 집필한 소설의 매력 중 하나다.
사실 공상 과학 장르에 있어 아시아, 특히 한국과 중국은 볼모지라고 볼 수 있다. 판타지적 성격을 지닌 SF의 경우 마니아층이 어느 정도 존재하지만, 사실성을 추구하는 하드 SF는 사장되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만큼 그다지 인기가 없다. 최근 들어 <인터스텔라>, <마션> 등 리얼리티를 살린 근미래 SF 영화가 괄목할 만한 흥행 성적을 거두고 있기는 하나 이것은 영화 이야기고, 적어도 출판 업계에 한해서는 독자층이 상당히 빈약하다.
그러나 류츠신의 <삼체>는 중국에서만 300만 부를 팔았으며, 2019년 한국에도 상륙하면서 좋은 성적을 내고 있다. 특히 비영어권 SF 작가 중에서는 가장 좋은 성적을 내고 있다는 점에서 불모지의 개척자라고 불리기에 충분하다. 소설의 흥행에 힘입어 류츠신은 2019년 1800만 위안, 한화 약 30억원의 로열티를 기록하며 중국인 작가 중 가장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이 되었다.
이처럼 류츠신의 작품들은 새로운 문화권의 시각에서 새로운 주제와 활용법을 보여줬고, 그의 노력은 불모지를 천천히 개화시켜 나가고 있다. 그는 현재도 식지 않는 열정으로 각종 단편을 출간하고 있으며, 대부분은 아직 한국어로 번역되지 않았지만 중국어에 자신이 있다면 시도해 볼 가치가 충분하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그의 대표작 <삼체>와 그 후속작 <암흑의 숲>, <사신의 영생>의 번역본을 먼저 구해서 읽어 보자. 영어권에서 출간된 공상 과학 소설이 질린다면, 반복되는 영어식 이름을 가진 주인공들이 탐탁치 않다면, 류츠신의 글로 신선함을 느껴 보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학생기자 김보현(SAS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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