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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스토리 in 상하이] Carpe diem!

[2021-10-29, 16:58:09] 상하이저널


날씨가 더운 여름에서 갑자기 추운 겨울로 심하게 굴곡진 그래프를 그리는 요즘 동요가 심한 마음을 추스르며 사는 일상이 벅차다. 체력도 체력이거니와 요즘 하는 상해 생활에 동고동락하며 쌓아 온 물건들의 안녕을 확인하고, 분류 작업도 한몫 하는 것 같다. 꾸물거리며 일을 하고는 있지만, 집의 상태를 보면 압박이 밀려든다. 나의 속도와 방식으로 끝까지 잘 할 수 있을지 저 깊은 밑바닥에선 불안과 귀찮음이 동요해온다. 매일 나오는 생활•재활용 쓰레기와 간간이 무거운 물건들을 낑낑대며 갖다 버리며 ‘이생의 업을 씻는 일인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가족들이 내 맘 같지 않을 때 마음이 답답해지며 ‘이 굴레가 언제 끝날까?’ 싶지만, 운동 한 번 갔다 오고 땀 한번 흘리고 나면 또 힘을 얻는다. 만나야 할 한 분 한 분 약속을 해서 수다 한 판이면 또 무얼 어떻게 해야 할지 계획이 생긴다.


책장 칸칸이 들어앉은 책을 정리하면서 툭 튀어나오는 전시회 책자나 엽서에 담긴 작품에 잠시 빠져보고, 베이커리 책에선 빵 굽는 냄새가 나는 것 같아 한참을 염탐한다. 끄트머리에 처박혀 있던 잡지를 넘기다 보니 눈길을 휘어잡는 이국 감성 그득한 모델의 하이 컷은 잊혔던 페르소나에 영감을 부어주는 것 같다. 이 모델은 세계적으로 활동하는 친구라 하니 역시 사람 보는 눈은 똑같은가 보다. 아이들의 옛 문집에 남겨진 흔적들을 스크랩하는 과정은 책갈피에 꽂아두어 투명하게 변한 꽃잎을 발견한 것처럼 반갑다.


큰아이가 어렸을 적 동생과 즐겨 읽었던 최애 도서를 팔았다. 구매자와 접선하며 작은 아이가 잠자리에 들 때 자주 읽어주었던 얇은 추억의 책까지 덤으로 선물했다. 그때는 뭐라도 좀 비우자는 생각이었는데, 아이들의 어린 날들을 펼쳐보는 것 같던 책과의 이별에 조금 아쉽다. 요 몇 년 물건을 안 사고 안 모았는데도 부엌 장, 신발장, 창고에서 먼지 앉은 살림들이 옹기종기 모여 날 좀 닦아달라고 써달라고 아우성치는 듯하다. 나의 청소 세포는 지금 위기에 맞닥뜨려 있지만, 이 순간이 얼마나 바래왔었는지 감사하게 음미해본다.


어느 애니메이션을 보다가 오랫동안 각인된 장면이 있다. 장소는 인간이 되는 것이 목표인 동물학교인데, 한 학생이 깨달음을 얻어 인간이 되었다. 친구들이 축하해주는 가운데 선생님은 대로하며 ‘누가 대학도 안 가고 인간이 되라고 했냐?’며 엄청난 압박을 주어 그 학생은 아쉽게도 도루 동물이 되어버렸다. 요즘 TV 프로그램 중에 아이돌 그룹이나 밴드 결성 프로젝트, 댄스팀 배틀 프로그램이 인기인데, 해를 거듭할수록 한계랄 게 없이 성장하는 능력이 보인다. 그들의 엄청난 연습량과 노력으로 다져진 실력에 팬이 되어 환호하면서도 한편으로 공부든 다른 분야든 엄마의 맘으로 지켜보는 입장은 힘들다. 아이들은 협업과 경쟁 속에 눈물 흘리며 나아가는 그들을 보며 어떤 생각을 할까? 그래도 ‘산다는 것’이 ‘살아남아야 한다’라는 극한의 공식은 아니기를….


특례를 치르고 나서 방문이 열리며 수다를 떠는 아이에게 전에 없던 생기가 돈다. 굳게 닫혔던 시간을 기다린 보람인 양 교류하고 사생활을 공유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오래 보아온 우리가 이제야 자세히 보게 된 것일까?

 

‘내 사랑아, 마음 가는 길을 따라가다 꽂히는 것이 있으면 푹 잠겨도 보자. 우리 진심으로 지금을 살아가자.’   

                                                              
여울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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