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파 속도가 가장 빠른 오미크론이 전세계를 융단폭격하듯이 전염시키고 있다. 1일 확진자가 80만 명 정점을 찍었던 미국도 아직도 1일 확진자가 20만 명씩 속출하는 현재, 대한민국도 2월 9일을 지나며 1일 확진자 5만명을 앞두고 있다. 양가 부모님이 사는 곳도 대도시인지라 오미크론이 덮쳤다. 연로하신 어머님이 가장 큰 걱정이었는데 열은 그다지 높지 않았고 하루 이틀 정도 만에 없어지는 정도, 목이 간질거리고 아프고 기침이 났는데 이것도 2-3일이면 사라졌다 하고 콧물도 그러했다. 개인차가 약간씩 존재했지만 노란 콧물과 가래가 보이며 증상이 사라지는 데까지 5-6일이 소요되었다 했다. 이렇게 코로나가 우리 곁에서 종식되면 좋겠다 싶으면서도 전파 속도는 지금도 당황스럽기만 하다. 다행히 자가진단 키트와 선별진료소 검사에서도 모두 음성이 확인되며 격리가 해제되어 일상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
예전에는 확진 되면 코로나19의 위중함, 치명성 때문에 말하기가 꺼려졌는데 오미크론의 전파 속도가 너무 빠르고 증상이 약하고 치명율이 낮다 보니 방역체계의 변화만큼이나 누구나 걸릴 수 있어 브이로그로 자신의 오미크론의 나아감을 중계하는 이도 있어서 별스러운 세상이다. 2022년 2월 9일이 이러해서 특별한 것이 아니다. 평생 교직에 몸담으셨던 나의 아버지, 나와 자녀들에게 그림이라는 DNA를 물려주셨던 나의 아버지가 2월 5일 소천하셨다. 친정집 건너편의 병원이라 아침 일찍부터 친정엄마와 언니가 계속 곁을 지키며 아버지의 마지막을 지켜 보고 전해주었다. 폐기능이 10퍼센트밖에 안되셔서 집에서 간병할 때 너무 응급실을 자주 가게 되어 친정 집 길 건너편의 요양시설을 갖춘 병원에서 생을 마치셨다.
98세이신 할머니가 마지막 2년을 보냈던 곳이기도 하다. 아버지는 96세이신 할머니를 모셔 놓고 하루도 빠지지 않고 아침 8시면 요양병원으로 출근하시듯 할머니께 가셨고 퇴근하시듯 6시에 돌아오셨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갑자기 건강이 나빠지셔서 모두의 근심이었다. 폐기능이 약해져 응급실을 드나들 때 아버지를 요양병원에 모시는 것은 자식들에게도 어려운 선택이었다. 할머니가 생을 마감하셨던 곳이어서인지 아버지는 앞서 입원하셨다. 아버지를 요양병원에 모신 후 어머니가 아버지가 그러하셨듯 매일 아침 7시면 바나나와 블루베리, 요구르트, 유산균, 사과를 곱게 갈아 아버지가 계시는 요양병원으로 출근을 하셨다. 아버지 침대시트를 손수 바꾸시고 패드를 바꾸고 일하시는 분들께 먹거리도 건네시며 본인이 계실 때 아버지가 볼일을 보시면 누가 볼 새라 치우고 아버지 피부가 진무를까 눈치를 보며 얼른 새 패드로 교환하셨다.
그래서인지 할머니를 보내고 80 넘기신 나이에 술만 드시던 아버지는 오히려 병원에서 얼굴에 생기가 더 돌고 고우셨다. 가까운데서 교사를 하는 언니와 형부가 매일 아버지를 뵈며 이야기 동무를 하고 멀리 제주에 있는 남동생도 서울에 있는 막내도 틈만 나면 아버지께 들러 효도를 다했다. 그러함에도 병원 침대에만 누워 계시는 아버지의 말년의 삶은 지켜보는 우리 모두에겐 안타까움이요 슬픔이었다. 더구나 타국에서 1년에 한 두 차례나 들러 아버지 얼굴을 보게 되는 나는 늘 불효다.
눈물이 계속 흐르면서도 이제 이생에서의 고통이 끝나 천국을 믿으신 아버지의 믿음대로 그 곳에 계시는 모습을 생각하며 임종을 지키지 못한 나를 보며 웃고 계실 모습을 그리며 그리워 해본다. 지금 있는 그 곳에서는 더 이상 아프지 않으실 아버지를 가슴에 꾹꾹 담아 본다. 사랑합니다.
Renny((denrenha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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