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곳 상해에 십여 년 가까이 지내면서 올 해 같은 가을은 처음이다. 가을이 언제 되려나 하고 있으면 하루아침에 두터운 코트를 꺼내 입어야 되는 겨울이 오곤 했다. 지리한 여름이 끝나기 무섭게 동장군이 쳐들어와 부랴부랴 월동준비를 해야만 했다. 가을을 송두리째 날려버린 듯한 아니 그 누군가가 하루아침에 가을을 훔쳐 가버린 듯 가을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상해에서의 첫 가을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10월 늦무렵 까지 더위가 사그라지지 않았다. 낙엽, 아침저녁의 스산한 바람, 바바리코트의 여운이 그리웠다. 간혹 만나게 되는 고국의 가을을 그린 화보나 얼핏 지나치는 가을 영상에 가을에 대한 진한 그리움을 달랬었다. 아니 어쩌면 이 가을의 정서를 느낄 겨를도 없이 보내었는지 모른다. 새로운 땅에서의 생활 익혀나가는 것이나 새로운 사람들과의 관계도 쉽지 않았고, 아이들의 학교 적응도 만만치 않은 문제로 나를 사로잡고 있었기에 가을을 느끼는 것은 나에게는 사치스러운 감정쯤으로 치부하였다.
이렇게 몇 번의 가을을 보내면서 일상적인 삶의 흐름 속에 가을을 느낄 겨를도 없이 훌쩍 시간이 흐른 것 같다. 아이들 키우고, 남편 뒷바라지 하면서 나를 잊고 그냥 그렇게 살아온 것 이다. 어쩌면 이제 진짜(?) 아줌마가 되는 것은 아닌가 하면서 초조해 했던 것이다. 나는 여전히 아줌마임에도 불구하고 그 아줌마라는 호칭이 주는 뉴앙스가 그다지 썩 달갑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부끄러움이나 몰염치함도 인식하지 못한 채 자기새끼 챙기기 바쁘고, 억척스레 재테크하여 재산을 늘리고, 남에게 뒤질세라 집 안팎을 나름대로 가꾸어 행세도해야 되겠고, 적당히 긴장감을 풀고 퍼진 모습으로 있어도 개의치 않고, 내 남편 내 아이 내 가족이 전부이기에 뻔뻔함으로 무장된 용감한 여장부가 연상이 되는 것이다. 하여 소녀 적의 그 순수함과 풋풋함을 한 켠에 여백으로 남겨둔 그래서 잊혀진 계절인 가을을 아쉬워하고 그리워하는 여인을 만나고 싶은 것이다.
가을이면 늘 열리는 여러 화랑들의 전시회도 보고 싶었고, 서울 근교를 조금만 벗어나도 쉽게 만날 수 있는 낙엽과 그 낙엽을 밟고 한참을 걷고도 싶었고, 그윽한 향기 같은 친구를 만나 삶의 깊은 이야기를 진하게 나누고도 싶었다. 새벽에 하얗게 내린 서리와 차갑게 걸려있는 하현 달 그리고 우수에 잠긴 바람을 느끼고 싶었다. 가을비에 떨어지는 낙엽은 또한 얼마나 처연한지 삶의 다른 깊이를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어쩌면 떠나와 있기에 애써서 그리운 것만 추억하는지 모르겠다.
이 가을이 그 동안의 그리움을 아는 것처럼 나를 감동케 한다. 깊어져가는 가을을 느낄 수 있었고, 낙엽의 짙은 색들을 음미할 수 있고, 스산한 바람이 머언 고국을 떠나와 가을의 정취 안에 잠기게 해주었다. 여태껏 살아오면서 숱한 가을을 만났는데 이제 초로의 나이에 접어들면서 더욱 깊이 있는 가을을 만나려는가보다. 피고 지는 삶의 순리 앞에 그리고 언젠가는 떠나야하는 질서 앞에 이 가을이 주는 깊은 의미를 되새겨보아야 하겠다. 소녀 적의 감상 어린 가을의 서정을 삶의 진리 앞에 내놓아 아픔과 고통을 통해 체득된 삶의 승화로 나아가야 하겠다.
▷ 진선정 주부 (cmh888990@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