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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을 말한 죄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2022-08-25, 20:15:11] 상하이저널
 
'명예훼손', 다들 들어봤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적시 명예훼손'이라 하면 잘 모른다. 외국에서 살고 있다면 특히나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존재에 대해 잘 모를 수 있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는 전세계적으로 폐지되는 추세이고, 우리나라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죄가 존재하는 극소수의 나라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2011년 유엔에서 우리나라에게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를 폐지시킬 것을 권유했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이 도대체 뭐 길래 국제기관에서까지 나서서 폐지하도록 하는 것일까. 
 
사실적시 명예훼손이란?

명예훼손죄의 성립요건을 들여다 보면 공연히 사실 또는 허위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것이다. 그렇다면 주의해야 할 점은 “사실 또는 허위 사실”, 즉 사실을 말하더라도 명예훼손의 성립요건을 충족 시킬 수 있다는 말이다. 물론 이 외에도 충족시켜야 할 조건은 공연성, 사회적 명예의 훼손, 고의성 등이 있다. 형법 제 307조 1항에 따라, ‘공연히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죄로,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그렇다면 친구에게 누군가의 험담을 한 것은 사실적시 명예훼손일까? 

최근 2021년 대법원 판결에서 친구와 단둘이 제3자의 험담을 했을 경우 전파성을 인정하기 어려워 명예훼손이 성립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하지만 누군가를 저격한 글을 인터넷에 올린다면 얘기는 달라질 수 있다. 특히 요즘같이 모두가 소셜 미디어를 사용하는 시대에 모두가 볼 수 있는 곳에 올리게 된다면 전파성을 인정하기 쉽다. 또, 사실 또는 허위사실적시 명예훼손이 인정되려면 고의성이 있어야 한다. 꼭 이 사람의 명예를 훼손시키겠다 까지의 의도는 아니더라도 사실 또는 허위사실을 공연히 적시하고 있음을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로 처벌받지 않을 수 있는 예외로는 그 적시된 사실이 공공의 이익을 위했을 경우이다. 이 부분은 뒤에 다시 예를 들겠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존폐론

허위사실적시 명예훼손죄는 논쟁의 여지가 없다. 없는 이야기를 지어내 퍼뜨리고 사람의 명예를 실추시킨 점에 대한 벌을 받아야 하는 것은 마땅하다. 그러나 사실적시 명예훼손은 다르다. 그저 사실을 말한 것뿐인데 왜 처벌을 받아야 하느냐고 억울해 하는 사람도 많다. 법조인들 사이에서도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를 둘러싼 논쟁은 오늘까지 계속되고 있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죄가 표현의 자유를 침범한다는 주장과 여전히 개인의 명예는 사회적으로 보호되어야 한다는 의견과 대립 중이다. 

그러나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는 가해자를 위한 법이며, 피해자를 가해자로 만들어 버리는 악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미투(MeToo)운동 중 자신이 성폭행 당한 사실을 폭로했다가 역으로 사실적시 명예훼손으로 고소 당하는 사례들은 수두룩하다. 성폭행 가해자들은 이 법을 이용하여 피해자들을 고소하며 2차 가해를 한다. 피해자를 보호해주지 못할 망정 피해자들이 발언할 수 있는 기회를 앗아가고 가해자들의 편을 들어주는 법은 폐지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뿐만 아니라, 학교폭력 미투, 회사 또는 학교의 비리를 폭로하는 내부고발자들도 같은 위험에 처한다.
 
판결 예시

한 여성이 자신이 성추행을 당한 사건의 판결문을 SNS에 올렸다가 사실적시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해 벌금형에 처해졌다. 법원의 판결은 “아무리 성범죄자라도 다른 사람의 신상과 범죄사실을 공개하면 안되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되면 고소가 두려워 피해자들은 자신이 당한 일을 평생 혼자 짊어지고 오히려 가해자들이 떳떳하게 전과를 숨긴 채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에 분노할 수 밖에 없다. 이러한 2차 피해 사실이 우리에게 잘 와 닿지 않을 수 있지만 입장을 바꿔 생각하면 이 법은 우리 모두가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가해자와 손잡고 입막음을 한다는 것이다.
 
다른 판례를 살펴 보자면, 편의점에서 절도를 한 초등학생의 사진을 편의점 문 앞에다 붙여 놓은 사건이다. 이 점주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했고 법원은 초등학생의 편을 들어주었다. 물론 절도는 범죄이다. 하지만 어른도 아닌 초등학생의 신상을 모두가 볼 수 있는 편의점 문 앞에다 붙여 놓는 건 사회적으로 이 아이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갱생할 수 있는 기회를 져버리는 것 같다.  만일 사실적시 명예훼손이 없어서 편의점 앞 사진이 그대로 붙어 있었다면 이 아이는 인터넷상에서, 그리고 학교에서도 무차별적 마녀사녕을 당해 심할 경우에는 자살에 이를 수도 있다. 이렇게 보면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는 정당할 때도 있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살펴볼 판례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를 재조명 시킨 배드파더스 사이트 사건이다. 배드파더스는 이혼한 후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은 “나쁜 엄마 아빠들”의 신상을 공개해 놓은 사이트다. 웹사이트에 실제로 들어가보니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은 사람들의 성명부터 출생연도, 최종학력, 거주지까지 모두 나와 있었다. 누군가가 웹사이트 운영자를 사실적시 명예훼손으로 고소하였고, 운영자는 재판을 받게 되었다. 고소인은 양육비 미지급 문제는 부모간에 개인적으로 해결해야 할 일이며 웹사이트를 통해 신상 공개를 하는 것은 엄연한 명예훼손이라고 주장했다. 반대측은 양육비는 부모간의 문제가 아니라 아이의 생존권이 달린 문제이며 모두의 문제라고 주장했다. 결국 법원은 배드파더스 사이트 운영자의 손을 들어주었고, 양육비 미지급 문제의 공론화는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므로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했다.
 

결론만 보면 정의 실현에 박수를 치고 싶을 것이다. 결론만 보면 말이다. 여기에서 생략된 것이 있다. 과정이다. 재판은 본래 긴 싸움이다. 재판마다 1~2년 정도 걸리는데 대법원까지 간다고 하면 4~6년 정도 걸린다. 이 기나긴 기다림 동안 겪는 정신적 피해와 불안은 감히 가늠할 수 없다. 시간문제뿐만 아니라 변호사 선임 비용도 큰 부담이다. 배드파더스 사건에서는 승소를 하긴 했지만, 그렇지 못한 다른 사건들은 그 기나긴 기다림 끝에 돌아오는 건 빚과 정신적 피해뿐이었다. 가지 않아도 될 길에 피해자들을 몰아넣은 것은 그 누구도 아닌 이 법조항이라고 생각한다.
 
중국, 사실일 경우 명예훼손 아니다

앞서 말했듯이 전세계적으로 사실적시 명예훼손을 죄로 인정하는 나라는 매우 적고, 우리나라는 그중 하나이다. 우리가 생활하고 있는 중국은 사실적시 명예훼손죄가 없다. 중화인민공화국 헌법 제 246조에 의하면, 명예를 훼손시킬 만한 사실을 퍼뜨린다고 해도 사실일 경우 명예훼손에 해당되지 않는다. 전세계에서 사실적시 명예훼손을 형법상에 두는 나라는 일본과 우리나라 둘 뿐이다. 미국은 명예훼손을 민사재판에서 다루고 독일에서는 허위사실 명예훼손만 인정하고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는 없다.
 
양날의 검,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는 양날의 검이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을 폐지하면 개개인의 사생활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우려가 있고, 폐지되지 않는다면 헌법이 보장해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 억울한 일을 당해도 호소할 곳이 없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경우 폐지 하느냐 안하느냐의 문제보다는 융통성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법도 융통성이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학생기자 김리흔(상해중학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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