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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 상하이 173] 오은영의 화해(상처받은 내면의 ‘나’와 마주하는 용기)

[2023-01-11, 07:15:27] 상하이저널
오은영 | 코리아닷컴(Korea.com) | 2019년 1월
오은영 | 코리아닷컴(Korea.com) | 2019년 1월
며칠 전 고1 짜리 큰 딸아이가 학교에 가기 싫다고 했다. 난 흔쾌히 허락했다. 그날은 딸이 나에게 ‘결석 쿠폰’을 사용한 참이었다. 결석 쿠폰은 딸이 학교에 가기 싫은 날이면 1년에 딱 1번, 아파서 학교에 못 간다고 엄마가 선생님께 거짓말을 둘러대 주는 우리만의 약속이었다.

큰아이는 상해에서도 유별난 교육열로 소문이 자자한 학교에 다니는데, 경쟁을 즐기는 본인 성향과 잘 맞았기에 큰 걱정 없이 보내고 있었다. 그런 딸조차 학교 분위기에 지쳤는지 아끼던 결석 쿠폰을 쓰고 집에서 푹 쉬겠다고 했다. 그런데 딸은 그다음 날도, 그 이튿날도 학교에 가지 않았다. 3일째 되던 날 딸아이와 대화하던 차에 소위 ‘멘붕’을 겪었다. 평소 똑소리 나게 자기표현이 명확하던 딸은 그날따라 울기만 하고 학교에 가기 싫다며 횡설수설했고, 정작 나는 그 상황에서 어찌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지금도 모르겠다. 그날 나는 딸을 혼냈어야 하는지, 위로했어야 하는지.

워낙 독립적이고 어른스럽던 딸은 그날 사실 어른 흉내를 내는 것을 포기하고, 가장 아이 다운 자기 모습을 보였는지 모른다. 그 당시 딸에게 필요했던 ‘감정적 뒷바라지’를 내가 엄마로서 해주지 못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는다.

나는 과연 엄마 역할을 잘하고 있을까? 그날 멘붕의 끝에 지혜가 절실했다. 야만적으로 경쟁하고, 결과에만 집중하고, 본능적으로 자기 안위에만 충실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사회 속에서, 나는 딸에게 과연 따뜻한 피난처이자 보호자가 되고 있는지? 갑자기 자신이 없어졌고 엄마 노릇 한 번 똑바로 하고 싶은 갈급함에 책장을 뒤지기 시작했다. 이때 눈에 들어온 책이 바로 ‘오은영의 화해’다. 아주 쉽지만 가슴으로 읽었던 책. 어린 시절 내 부모와 나의 관계, 그때의 감정 상태를 처음으로 바로 인식하게 해준 책. 오늘은 상처받은 내면의 ‘나’와 용기 있게 마주함으로써 나는 어떤 엄마일지 뒤돌아보게 만든 이 책을 소개하고 싶다.

‘아이는 아이답게 자랄 때가 가장 건강합니다. 누구든 그 나이에 맞는 행동을 할 수 있어야 가장 건강한 겁니다.’

‘인간에게는 꼭 채워져야 하는 의존 욕구라는 것이 있습니다. 독립적이냐, 의존적이냐 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에요. 중요한 사람에게 조건 없이 가장 소중한 존재로 여겨지는 경험, 사랑이 필요할 때는 사랑을, 위로가 필요할 때는 위로를, 보호가 필요할 때는 보호를 받아야 하는 기본적이고 생존적인 욕구가 바로 의존 욕구입니다, 그런데 이 의존 욕구를 채우지 못하고 어른스러워야 했던 아이들은 ‘허구의 독립성(pseudo-independence)’을 갖게 됩니다. 실은 의존적인데 겉으로는 독립적인 것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이 책을 읽고 난 후, 나는 딸의 입장이 되어본다. 5살 터울이 나는 꼬맹이 여동생을 둔 장녀. 독립적이고 착한 딸. 손이 가지 않고 부모에게 걱정 끼치지 않는 첫째 딸은 그야말로 과거의 나보다 더 독립적이다. 맞벌이 부부인 우리 집은 큰딸이 아주 어릴 때부터 이미 딸의 학업과 생활을 크게 챙기지 않았다. 딸이 초3이던 어느 날 학교 홈피를 보다가, 문화 예절 수업 단체 사진에서 유일하게 우리 애만 한복을 입고 있지 않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한복을 챙겨 보내지 못한 미안함에 딸에게 물었으나 큰딸은 ‘쿨하게’ 괜찮다며 웃었다. 어찌나 무심하고 쿨한지 정말 괜찮다고 믿었다. 지금은 다시 생각해 본다. 우리 딸은 그때 정말 괜찮았을까?

오은영 박사는 ‘아이가 원하는 사랑을 주라’고 말한다. 부모가 아이 마음에 충족감을 줄 때 그 순간 아이는 굉장히 행복해하고, 그 기억은 평생을 간다고. 아이를 대할 때는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가 아니라 ‘아이가 무엇을 원할까?’ 를 생각해야 한다고, ‘내가 아이에게 하는 말이나 행동이 아이에게 어떻게 가서 닿을까?’ 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책에는 수많은 상담의 사례가 등장한다. 폭력적인 부모, 사랑의 이름으로 고통을 주는 부모, 그런 부모를 미워하지도 못하는 아이, 그로 인한 일상의 아픔 등 드라마 같은 사연부터 일상적인 모습들까지. 모두 나의 모습이었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자식이 되었다가, 부모가 되었다가… 계속해서 사연에 나를 대입하며 스스로를 치유했고 조금은 변화된 부모로서의 모습을 찾아갔다. 오은영 박사의 추천사처럼 나와 같은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통해 상처받은 나와 미워했던 나를 화해하는 소중한 시간을 갖기를 바란다.

최인옥

외국에 살다 보니 필요한 책들을 구하기가 쉽지 않아 이 문제를 함께 해결하고자 책벼룩시장방이 위챗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그리고 2017년 9월부터 한 주도 빼놓지 않고 화요일마다 책 소개 릴레이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아이의 엄마로, 문화의 소비자로만 사는 데 머무르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온 여성들의 이야기를 상하이 교민 여러분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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