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메뉴

상하이방은 상하이 최대의 한인 포털사이트입니다.

[허스토리 in 상하이] 소수자라서 다행이다

[2023-11-25, 07:35:11] 상하이저널

어릴 때 한족 동네를 지날 때면 짓궂은 한족 아이들이 긴 나무 막대기로 길을 막고 못 지나가게 괴롭히는 일이 가끔 있었다. 그 아이들이 “고려봉자(高丽棒子)”라고 욕을 했다. 그 말이 그때 정확히 무슨 뜻인지는 몰랐지만 기분 나빴으니 당연히 욕이라 생각했다. 그러면서 이런 이상한 호칭으로 불리는 우리는 얘네랑 좀 다른 사람이구나 알게 되었다.

대학교 때에도 다수에 속하지 않은 소수민족이란 신분 덕에 다양한 상황을 경험했다. 전국인민대표대회가 열릴 무렵에는 소수민족 대학생으로, 한복을 입고 천안문 앞에 위치한 인민대회당에서 그 대표들을 마중하는 중요한 임무를 수행했다. 그럴듯해 보이지만 사실은 화려한 전통의상으로 행사장을 꾸미는 화병 같은 역할이었음을.
그 후 한국서 살 때도 역시 소수자에 대한 호기심 어린 시선을 느꼈다. 불합리한 상황을 경험한 자의 넋두리 같은 건 아니다. 물론 드물게 사람을 불편하게 하는 언행도 있었지만 그런 일일수록 별로 대단치 않음을 나 또한 간파할 수 있었기에 상처가 되진 않았다. 

얼마 전 상하이(구베이) 한인문화센터인 '리멤버'에서 <불하된 조선인>이라는 영화를 보게 되었다. 재일조선인 후예인 오충공 감독의 이 영화는 보는 내내 충격이었다. 다큐멘터리 형식의 영화로, 간토대지진 직후 조선인에 대한 대학살을 증언해 주는 많은 분의 절제된 언어 속에서도 화면에 표현이 되지 않은 끔찍한 만행이 상상이 갔다.

이 영화 관련 시대적 배경을 설명해 주신 어떤 선생님은 식민 지배의 맥락으로 간토대지진 후의 조선인 대학살을 이해해야 한다고 하셨는데 나는 일본 국내에서 벌어진 이 만행은 다수자가 그 사회 소수자에 가해진 편견과 혐오와 이기심에서 비롯된 야만적인 학살이 아닐까 생각을 했다.

지배층은 자신의 통치 지위가 불안하게 느껴질 때면 항상 자신의 안정적인 정권 유지를 위해 다수를 단합시킬 공공의 적을 만들어 내는 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그리고 이런 지배층의 의도를 충실히 따르고 집행한 이들은 사실 우리처럼 지극히 평범한 다수의 사람이었다. 그렇게 많은 이에게 무자비한 행태의 살인까지 저지를 수 있는 인간 내면의 악이 어디까지일지 생각해 보았다.

한나 아렌트가 다뤘던 ‘평범한 악’이라는 주제가 떠올랐다. 악마는 결코 무서운 얼굴의 괴물이 아니라 바로 우리처럼 평범한 모습의 보통 인간이었다. 르봉 또한 <군중심리학>에서 개인이 일단 군중의 하나가 될 때는 그 상황의 영향을 아주 많이 받으며 격정적, 맹신적, 파괴적 행동을 많이 하게 된다고 얘기했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 자신이 속한 무리에 들어야 안정감을 느끼고, 또 그 무리의 인정을 받고 싶어 한다. 하지만 역사상 모든 인재는 대부분 상층 이익집단과 이런 다수의 평범한 인간들이 같이 연출해 낸 인류 문명 파괴의 가장 처참한 현장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사실 우리가 다수가 되는 상황을 경계해야 할 것이다. 다 같이 한 목소리를 낼 때, 뭔가 틀리지 않았을까? 뭔가 놓치지 않았을까 더욱 조심해야 하고 사건의 본질이 무엇인지 긴장해야 한다.

사실 남들과 별로 다르지도 않지만, 출생지와 민족적 구분으로 인해 뜻하지 않게 인구적 소수자가 된 내 신분도 꽤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소수에 속해 있어서 남에게 무의식적인 피해를 조금이라도 덜 줄 수 있다면, 그리고 변두리에 있기에 주류 사조와 고정관념에 쉽게 휘둘리지 않고 세상을 향한 관찰자의 시각이 될 수 있다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별 의미 없는 결론을 도출해 냈지만, 한순간 기분이 산뜻해졌다.

소이(mschina0520@naver.com)

ⓒ 상하이방(http://www.shanghaibang.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전체의견 수 0

댓글 등록 폼

비밀로 하기

등록

가장 많이 본 뉴스

종합

  1. 上海 중국 최초 전자비자 발급
  2. "2030년 中 전기차 업체 80%가..
  3. 中 144시간 환승 무비자 37곳으로..
  4. 中 상반기 부동산 업체 주택 인도 규..
  5. 中 최대 생수업체 농부산천, 잠재발암..
  6. 中 6월 집값 하락세 ‘주춤’…상하이..
  7. 2024년 상반기 中 GDP 5% 성..
  8. 中 해외직구 플랫폼 급성장에 화남지역..
  9. 국내 시장 포화에 中 모빌리티 플랫폼..
  10. 얼리버드 티켓 20만 장 매진! 上海..

경제

  1. "2030년 中 전기차 업체 80%가..
  2. 中 144시간 환승 무비자 37곳으로..
  3. 中 상반기 부동산 업체 주택 인도 규..
  4. 中 최대 생수업체 농부산천, 잠재발암..
  5. 中 6월 집값 하락세 ‘주춤’…상하이..
  6. 2024년 상반기 中 GDP 5% 성..
  7. 中 해외직구 플랫폼 급성장에 화남지역..
  8. 국내 시장 포화에 中 모빌리티 플랫폼..
  9. 삼성, 中 갤럭시Z 시리즈에 바이트댄..
  10. 상하이 오피스 시장 수요 회복…하반기..

사회

  1. 上海 중국 최초 전자비자 발급
  2. 얼리버드 티켓 20만 장 매진! 上海..
  3. [인터뷰] 서울과 상하이, ‘영혼’의..
  4. ‘삼복더위’ 시작…밤더위 가장 견디기..
  5. 항공권 가격 천차만별…출발 전날 티켓..
  6. 끊임없는 아동 학대, 그 처벌과 기준..
  7. 上海 프랑스 올림픽, 영화관에서 ‘생..
  8. 上海 고온 오렌지 경보…37도까지 올..

문화

  1. 상하이한국문화원, 상하이 거주 '이준..
  2. [책읽는 상하이 246] 방금 떠나온..
  3. 무더운 여름, 시원한 미술관에서 ‘미..
  4. [인터뷰] 서울과 상하이, ‘영혼’의..
  5. 상하이, 여름방학 관광카드 출시…19..

오피니언

  1. [안나의 상하이 이야기 13] 나이키..
  2. [[Dr.SP 칼럼] 장마 후 여름이..
  3. [허스토리 in 상하이]내가 오르는..
  4. [독자투고]미국 유학을 위한 3가지..
  5. [허스토리 in 상하이] 재외국민 의..
  6. [무역협회] 신에너지 산업의 발전,..
  7. [상하이의 사랑법 15]부족한 건 사..
  8. [무역협회] AI 글로벌 거버넌스,..

프리미엄광고

ad

플러스업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