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꿈을 잘 꾸지 않는다. 엄밀히 말하면 거의 기억을 못 한다. 그런데 어느 날 영화를 보듯 너무나 영롱한 꿈을 꾸었다. 그런데 그 꿈을 꾸면서도 나는 꿈속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밝은 연두색과 노랑과 분홍색 색연필로 점묘법처럼 그려진 행성 사이를 날아다니고 있었으니까. 잠에서 깨어나서도 토성의 띠가 손에 잡힐 듯 기억났다. 이상한 일이었다.
그런데 그날 아침 뉴스를 보고 깜짝 놀랐다. 제임스웹 망원경으로 찍은 별들이 형형색색 영롱하게 반짝이는 사진이 머리기사로 올라와 있었다. 어, 내가 이 사진을 보려고 예지몽을 꾼 거라고? 뭔가 석연치 않으면서도 백만 년 만에 꾼 꿈이 별꿈이니까 괜찮다고 스스로 다독였다. 나중에야 그게 태몽이란 걸 알았다,
나는 태명을 별이라고 지어주자고 제안했다. 그런데 우리 딸 부부는 이미 동동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 손녀의 태명은 ‘별동이’가 되었고 자연스럽게 ‘별똥이’라 부르게 되었다.
별똥이는 귀가 매우 예민했다. 비닐을 바스락거리면 그 소리를 들으려고 울음을 그쳤다. 잠투정이 심했던 자기 엄마와 다르게 이른 저녁부터 아침까지 통잠을 잤다. 어느새 옹알이를 하고 무의미한 음절에도 깔깔 웃었다. 아이가 웃으면 온 세상이 햇살을 뿜으며 웃음을 터뜨리는 것 같았다. 내 딸을 키울 때는 시할머니부터 4대가 함께 사는 집에서 시집살이하느라 오롯이 아이를 들여다보기 어려웠지만, 할머니가 되고 보니 아이의 작은 반응 하나하나가 경이로웠다. 아이가 순하기도 했지만, 늘 살피고 있으니 아이가 크게 울 일이 없었다.
하지만 별똥이가 밥을 먹기 시작하고 의사 표현이 확실해지면서 애 밥 먹이는 게 큰 일이 되었다. 어떤 날은 ‘하정우식 김 먹방’을 시전하기도 하지만, 또 어떤 날은 밥숟가락 앞에서 고개를 저었다. 이런저런 시도 끝에 먹히는(?) 답을 찾은 것 같았는데 계속 통하는 답은 없었다. 어디 먹는 것뿐이랴? 부모가 가급적 규칙적인 생활 리듬을 만들어주려고 애를 쓰지만 아이는 늘 변했다. 아이가 깔깔거리고 웃는 모습을 자꾸 보고 싶은데 아이의 웃음 포인트도 늘 달라졌다.
그래도 신통한 것은 이제 고작 1년 반이 된 아기가 분위기 파악을 기가 막히게 한다는 것이었다. 저 혼자 걷거나 놀다가 넘어지면 여간해선 잘 안 우는데 누군가 밀치면 너무 서럽게 운다. 뭔가 떼를 쓰다가도 아이 눈을 보면서 진심을 갖고 설명하면 마치 알아들은 것처럼 수긍하고 더 이상 떼를 쓰지 않는다. 아직은 ‘엄마’ ‘아빠’를 감탄사로 말하는 수준이지만, 자기가 어떻게 머리를 ‘꿍’ 하고 박았는지 세상 진지한 얼굴로 설명한다. 물론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어쩌면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의 진정한 핵심은 교육환경이 중요하다는 일반적인 의미보다는 아이를 주의 깊게 잘 살피는 데 있지 않을까. 똑같은 환경이라도 아이마다 관심을 쏟는 것이 다 다를 것이고, 똑같은 상황이라도 받아들이는 방식이 다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아이의 마음을 세심하게 관찰하고, 예상되는 어려움이나 위험은 없는지 살피면서 우리 아이에게 필요한 것들이 무엇인지 헤아리는 것이 부모나 교사의 몫이 아닌가 싶다.
그렇게 해답을 찾아도 성장기에 금방 작아지는 아이들 옷처럼 끊임없이 다른 문제들이 나타날 것이지만, 작아진 옷에 몸을 맞출 수 없듯이 그 변화를 수용하고 기뻐하면서 또 새로운 변화와 도전을 모색하게 하는 것 또한 교육하는 사람의 자세일 것이다.
어차피 부모보다 덩치가 커진 아이들은 스스로 납득이 되지 않으면 말을 듣지 않는다. 말을 듣는 척은 할 수 있어도 진짜 변화하지는 않는다. 이제 고작 1년 반 된 아기도 진심을 갖고 설명을 하면 수긍을 하는데, 아무리 질풍노도라는 사춘기 아이들이라고 해서 진심을 다해 존중하는 태도로 이야기한다면 듣지 않을 이유가 없다.
부모의 욕망과 기대를 투사하려 하지 말고 아이가 정말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살펴보자. 현실성 여부나 보상의 많고 적음으로 예단하지 말고 그 좋아하는 것에 깃들어 있는 소망을 긍정적인 에너지로 키워보자.
다음 주엔 별똥이네 식구들이 상하이에 또 온다. 지난주에도 별똥이 아빠가 학회 참석차 주말을 끼고 왔었다. 금요일날 어린이집에서 4시에 픽업해서 바로 공항으로 직행, 금요일 밤에 상하이 와서 월요일 아침에 한국으로 돌아가 어린이집에 바로 맡기는 코스다. 이런 패턴으로 연말까지 서너 번 더 올 기세다. AI 분야에서 중국의 위상이 높아진 상황을 감안하더라도, 주말 전일제 근무(?)를 피하고자 일부러 상하이에서 열리는 학회만 골라서 오는 건 아닌지 살짝 의심이 든다. 덕분에 별똥이 커가는 모습을 가까이 지켜볼 수 있어 즐겁다. 별똥이 마음을 가장 잘 헤아려주는 할머니 할아버지를 찾아오는 현대판 맹모삼천지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