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춘이 지나니 성큼 봄이 온다. 매화는 아기 손톱만큼 한 꽃분홍 얼굴을 내밀고 날 좀 봐달라며 손짓한다. 잰걸음 멈추고 매화나무 밑에 들어가 꽃들을 살피고 하늘도 본다. 파란 하늘과 꽃분홍 매화. 내가 살던 고향, 꽃피는 산골 백곡에도 봄이 오고 있겠지?
앞을 봐도 산, 뒤를 봐도 산인 곳이 내 고향이다. 그 옛날 둥근 상에 둘러앉아 저녁을 먹으며 보던 <6시 내 고향>.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며 고향의 정취를 물씬 안겨다 주는 정겨운 프로그램이지만, 내 고향이 소개되는 날은 기분이 묘하다. <오지의 마을 백곡의 빙어 낚시를 소개하겠습니다.> 매서운 바람에 볼이 발그레해진 리포터의 말이 귓가에 맴돈다. 오지의 마을이라... 오지가 무슨 뜻이지? 알 듯 모를 듯, 알지만 알고 싶지 않은 오지라는 단어를 소녀는 곱씹어 본다. 그리고 오지를 오즈로 바꿔 불러 본다. '오지는 깊은 산골을 뜻하는 말일지도 몰라. 하지만 난 오지를 오즈라 부르겠어. 오즈의 마법사의 오즈 말이야. 도로시가 모험하는 신비로운 세상 말이야. 어쩜 오지랑 오즈는 같은 뜻일지도 몰라' 하며 그럴싸하게 우겨본다.
나는 시골 사람인 게 싫었다. 촌스럽고 투박한 여인의 손마디 같은 말 <시골> 뽀송뽀송한 내 손에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우리 집에는 매주 서울에서 친척들이 봉고차를 타고 한 무더기씩 놀러 오곤 했는데 그때 사촌 언니, 사촌 동생들이 너무나 부러웠다. 찰랑찰랑 원피스도 예쁘고, 하얗고 뽀얀 피부도 빛나고, 서울 말씨도 세련되고, 가방에 넣어오는 손바닥만 한 잡지들도 그렇게 좋아 보일 수 없었다.
아빠도 결혼 전에는 서울에서 살았다면서 왜 시골로 돌아와 나를 낳고 동생을 낳았는지 궁금했다. 서울 사람이 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박탈당한 사건이라 생각했다. 동생도 고모들의 "시골에서 온 조카야.” 라는 소개말이 싫었는지 발끈하며 "시골이 아니라 지방이라 해주세요." 라는 말을 꼭 덧붙였다. 그런 중에도 나는 호시탐탐 아빠 마음이 변해 "우리 서울로 이사 가자."라는 말이 나오길 기대했다. 하지만 아빠는 눈을 감는 그 순간까지 고향 산천을 사랑하셨다. 성인이 된 내가 서울로 가는 게 빨랐다.
막상 서울에 가니 좋긴 좋더라. 놀거리, 먹거리 많고 세상천지가 반짝인다. 후줄근한 옷에 슬리퍼 질질 끌고 밖을 나가도 백화점이고 조조영화, 심야 영화를 끌리는 대로 볼 수도 있다. 술집은 어찌나 많은지 이곳이 천국이로구나! 시골의 저녁은 개 짖는 소리와 이집 저집 밥 짓는 냄새만 나는데 서울에는 오만가지 냄새가 동시다발적으로 올라오는 게 신기했다. 그렇게 몇 년 서울살이를 했다. 처음엔 천국 같던 생활에 조금씩 지쳐갔고 고향의 고즈넉함이 그리워졌다. 뾰족구두보다 단화가 내게 더 잘 어울림을 알게 됐다. 촌년은 촌년이구나. 아빠가 고향으로 돌아간 까닭을 알 것 같았다.
그러다 남편을 만나 상하이에 오게 되었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은 상하이의 깊숙한 곳 송강이다. 지금은 많이 도시화었지만 이사 올 때만 해도 자연이 너울대는 조용한 곳이었다. 송강은 고향의 손길처럼 나를 감싸 안는 포근함이 있다. 회색빛보다 초록빛이 짙은 곳이라 그럴 것이다. 어릴 때는 시골이 그렇게 싫더니 요즘은 내가 시골에서 태어나고 자랐다는 사실이 자랑스럽다. 이젠 안다. 그 시절 온몸으로 느꼈던 햇살과 노을, 초록의 변화, 꽃들이 춤, 바람의 노래. 자연에서 느꼈던 모든 것이 지금의 나를 있게 한다는 것을. 쓰러져도 일어날 수 있는 힘의 시작이라는 사실을. 나는 내가 시골 사람이라서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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