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생활을 하다보면 우리 자녀들이 우리 것을 잃어가는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는 일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다. 한국어에도 나름대로 고급단어(?)라는 것이 있는데, 이런 용어사용은 물론 뜻조차 이해되지 않아 어안이 벙벙해지는 경우도 가끔 생긴다. 불과 상하이 생활이 몇 년 되지 않는 교민들도 때론 중국어가 더욱 확실하게 의미전달을 해낼 때 ``이렇게 자연스럽게 중국화 되어가는 구나'' 싶을 때도 있다.
얼마 전 재일교포 3세의 젊은 청년을 만났다. 일본의 문구 통신판매회사인 Tano mail Shanghai(达乐美尔)에서 일하고 있는 윤희창씨(28).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랐고, 일본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그가 유창한 고급 한국어를 구사하는 것에 약간 놀랐다. 조부모, 외조부모는 물론 부모님 모두 한국인이다.(외조부는 일제시대때 일본군의 포로를 관리하다 훗날 국제재판에서 전쟁범죄자로 판정된 아픈 가족사를 갖고 있기도 하다.) 보통 교포 2세만 되더라도 어색한 우리말 발음 때문에 웃는 일도 생기지만, 윤희창씨는 달랐다. 발음은 물론 오랜만에 접해보는 패기에 찬 한국의 젊은 청년을 마주하는 느낌이다. 동경에서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일본인학교를 다녔던 그는 대학은 한국을 택했다.
"고등학교때 일본주재원 자녀인 한국친구들을 만났다. 그들을 통해 내가 한국인으로서 자각이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고, 한국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강해졌다."
이런 선택을 한 후 3개월간의 한국어 언어연수를 거치고 한국의 한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할 수 있게 되었다. 졸업 후에도 계속 한국에서 일하고 싶어 취직을 했다. 그러나 군문제로 그것도 여의치 않게 되자 일본회사로 방향을 바꿨다.
현재 근무하고 있는 Tamo mail은 일본 문구통신판매회사로는 업계 2위에 꼽힌다. 작년 8월에 상하이에 진출해 준비기간을 거쳐, 올 8월부터 본격적인 중국시장 공략을 시작하게 된다. 그가 맡은 분야는 영업이다. 그래서 근래 들어 한국기업인들의 모임에도 몇차례 참석을 하면서 새롭게 느낀 것들이 많다고 한다.
"그동안 한국어를 할 기회가 없었다. 영업을 한다기 보다 한국어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되서 더욱 보람을 느끼고 있고, 특히 국적을 떠나 상하이로 나온다는 것은 `야망'이 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된다. 그들을 만나면서 자극도 되고 배울 점도 많은 것 같아 기쁘다."
이에 반해 실제 중국인들을 만나면 일본회사라는 거리감을 느끼는 것 같다면서 아쉬워한다. 한국인들 역시도 토종한국인이 아니라 그런지 부자연스러워 하는 것 같기도 한다고 한다.
그의 올해 목표는 Tamo mail이 중국시장에 안착하는 것과 자신의 중국어 실력이 한국어만큼 할 수 있는 실력을 쌓는 것이다. 중국에서 일하면서 중국어를 못한다는 것은 그 만큼 기회에 있어서 손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짧은 만남속에서 한국스러운 '바름'과 일본인특유의 '배려'가 함께 전해져 온다.
▷고수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