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재, 윤치호, 이승만 등과 만민공동회(萬民共同會)를 개최하였고 1900년 미국으로 건너가 한인공동협회를 만들었다.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1906년 귀국, 1907년 이갑, 양기탁, 신채호 등과 함께 비밀결사인 신민회(新民會)를 조직하여 《대한매일신보》를 기관지로 하여 민중운동을 전개하였다.
같은 해 평양에 대성학교(大成學校)를 설립하고 평양과 대구에 태극서관을 건립하였다. 1912년 미국에서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를 조직하고 《신한민보》를 창간, 이듬해 흥사단을 조직하였다. 1919년 3·1운동 직후 상하이에 가서 대한민국임시정부 내무총장 겸 국무총리 서리 등을 지냈고 서재필, 윤치호 등과 함께 《독립신문》을 창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