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정도 되는 상해 생활을 하는 동안 제대로 된 중국 전통 문화를 느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던 내게 경극과 비슷한 곤극을 같이 관람하자는 지인의 전화는 문화적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처음 중국의 경극(京剧)을 접한 것은 장국영이 주연했던 영화 <패왕별희>를 통해서였다. 경극의 내용은 전혀 알지 못하고, 그저 짙은 분장을 한 장국영의 고운 목소리와 야릇한 손짓에 매료되어 경극을 한번 정도는 꼭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아이들과 함께 관람을 하자고 하니 정말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들어 고마운 마음으로 마오밍루(茂名路)에 자리한 란신대극원 (兰心大剧院)으로 달려갔다.
곤극(昆剧)은 600년 전 명나라 때 곤산 (昆山)지역에서 시작된 시, 노래, 무용, 희극, 그림이 한편에 펼쳐지는 종합예술이며,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경극보다도 더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중국의 전통문화이다. 장생전(長生展)은 모두 4本으로 이루어진 예술극인데 每本은 9出로 이루어져 每本당 3시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된다. 내가 보았던 제 3本은 장생전 중에서도 가장 역동적이고, 비극적인 내용이며, 중간중간 희극의 요소가 포함된 가장 재미있는 부분이었다.
당현종과 양귀비의 사랑과 `안록산의 난' 때문에 맞게 된 비극적인 이별, 그리고 우리 설화에도 등장하는 직녀의 도움으로 양귀비가 승천하고 다시 현종과 만나게 된다는 역사와 다소 황당한 설화가 조화된 내용, 당현종과 양귀비의 정적인 노래와 무용, 그리고 `안록산의 난'을 표현한 군사들의 서커스를 닮아있는 힘찬 몸짓, 양귀비의 목욕 장면을 훔쳐보는 시녀들의 재미있는 몸짓과 말투…… 배우들은 화려한 분장으로 직접 노래와 무용을 하며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아 세시간 정도의 시간을 지루하지 않게 만들어주었다. 같이 장생전을 관람한 아이들은 당 현종과 양귀비의 사랑의 세라나데 (?) 를 조금 지루해하긴 했지만, `안록산의 난'을 묘사한 부분에서는 시원한 웃음을 웃으며 같이 즐겼다. 곤극 관람 전에 못 알아들으면 어쩌지? 하는 걱정은 무대 위쪽에 디지털로 표기되는 중국어와 영어 자막 덕분에 해소될 수 있었다.
중국에 살고 있다면 한번쯤은 경험해보면 좋을 중국 전통문화 체험. 비록 전체 장생전을 다 보지는 못했지만 새로운 문화를 접해보았다는 뿌듯함이 무료한 일요일 오후를 채워주었다.
▷권수진(sjkwon2@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