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투고
늦었지만 상하이 저널 400회 발간을 축하한다. 그러고 보니, 상하이 저널이 태동할 즈음, 나는 열심히 절강성 이우를 돌아 다니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한국인이 천명~2천명이던 시절, 음식점을 가면 거의 한 다리만 거쳐도 모두가 다 아는 처지에서 이제는 30배 40배가 넘는 숫자로 불어나 음식점 주인도 잘 못 알아보는 그런 한인 사회가 되었다. 상전벽해(桑田碧海)라고나 할까, 논 위에 건물이 들어서고, 밭 위에 도로가 깔리고 이제는 숨겨져서 잘 안 보이는 자투리의 땅 위에도 유명 매장이 들어서는 그런 시간이 되어 버렸다. 나보다 더 오래 된 분들도 계시고, 비슷한 시기에 오신 분들도 계시리라. 가끔씩 뒤 돌아 보며 무슨 생각들을 하시는지…….
그 당시 나와 함께 열심히 사업을 논하며, 찐베이(봉고차)로 절강, 강소를 누비던 친구는 오래 전에 상해를 떠나 한국으로 귀국을 하였지만 난 아직 여전히 이곳에 남아 있다(?). 끈질기게 버티는건지, 벗어날 수 없는 굴레인지는 불분명하지만 아무튼 이곳이 좋아서 남아 있고, 아직도 이곳에서는 진행 중이고 나아가야 할 길이 많아 상해의 비바람과 햇살과 함께 하고 있다.
살다 보면 눈물이 날만큼 기쁜 일도 있고 가슴을 움켜쥐고 울지도 못하는 애이불비(哀而不悲) 할 때도 있을 것이다. 시간이 많이 흘렀음인가? 얼마 전 오랜 지인이 지병으로 영면 하셨다. 한때는 중국을 호령하며 젊음을 불살랐던 분이셨는데, 안타깝게도 너무 일찍 망자가 되어 버렸다. 그분의 경험담을 듣고 있노라면 마치 나자신이 필드에서 체험하는 듯한 착각 속에 빠져도 들고, 비즈니스 도중의 작은 실수도 그분의 경험을 통해 미리 커버가 되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데….. 오래 된 듯하나, 오래 되지 않은 듯 한데, 어떤 이유에서건, 주변의 영걸(英杰)들은 한둘씩 자리를 바꾸고 있다.
미국에 사첼 페이지라는 유명한 흑인 투수가 있었다. 그는 42세에야 메이저리그에 데뷔했고, 메이저리그 최초의 흑인 투수이자 최초로 월드 시리즈에 진출했으며, 60세가 되던 해 선발투수로 나서 3이닝을 던지고 은퇴를 한 미국 프로야구계에서는 알아주는 전설적인 인물이다. 그의 묘비명에 적힌 글을 옮기며, 부디 힘 들어 하는 상해의 모든 한국인들이 슬픔과 역경을 이겨내고 아울러 모든 분들이 꼭 원하는 바를 다 이루시길 기원한다.
절대 고개를 숙이지 말라
포기하고 슬퍼하지도 말라
다른 방법을 찾아보라
그리고 일이 순조로울 때 기도하지 않았다면, 근심이 생겼을 때도 기도하지 말라.
▷ 조용한 상인(trntr2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