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메뉴

상하이방은 상하이 최대의 한인 포털사이트입니다.

[허스토리 in 상하이] 우리 집 금쪽이

[2022-03-23, 18:32:16] 상하이저널

내가 즐겨보는 방송 중에 ‘금쪽같은 내 새끼’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제목의 ‘금쪽이’란 뜻은 아주 귀한 의미로 쓰이지만 사실, 방송 내용은 문제 있는 아이와 부모가 나와 오은영 박사와 함께 행동을 교정하고 고쳐주는 게 주된 내용이다. 방송에선 상담 받는 아이의 이름 대신에 쓰이는 표현이 금쪽이다. 

우리 집에도 금쪽이가 있다. 

코로나로 업무에 직격탄을 맞았던 2020년은 회사 일에 치여 정신이 없었고, 연말에는 병상에 계시던 아버지를 여의었지만 갈 수가 없어 속만 태우고, 일 년 뒤에는 코로나 백신 부작용으로 동생까지 잃고 맨탈이 나가버린 남편이 우리 집 금쪽이다.

 

  

 "아버님이 직접 키우던 텃밭 고추는 잘 말려 고춧가루와 고추장이 되어 국제택배로 상하이로 왔다. 하루이틀도 아니고 20년을" 

 

남편에게 아버지와 동생은 인생에 있어 가장 큰 버팀목이었다. 중국과 국교 수교 전에 아들을 중국유학을 보내야겠다고 생각했던 분이 아버지셨고, 형이 중국유학을 하는 동안 부모님을 돌봐드리며 사실상의 장남 역할을 했던 동생이었다. 하필, 코로나로 아끼던 두 사람을 일 년 간격으로 잃고 나서 남편은 텅 빈 눈동자로 낱장씩 찢어 버리는 달력처럼 하루를 버렸다. 

남편의 하루하루는 보는 나도 힘이 들었다. 그 사이 큰아이는 대학을 가고 둘째는 고등학교 입학시험인 중카오(中考)를 준비하느라 나는 남편과 아이 사이에서 눈치도 봐야 했고 중심도 잡아야 했다. 한국을 한 번 다녀오는 게 왜 그렇게도 쉽지 않던지. 올해 춘절을 보내고서야 한국행 비행기 표를 예약할 수 있었다. 베개가 다 젖도록 꿈속에서 찾던 아버지와 동생을 보러 가는데 같이 가지 못하는 우리에게 미안했던지 남편은 여러 가지를 챙겼다. 

내가 출근할 때 입을 원피스와 재킷, 교복과 운동화, 큰 아이의 가방을 깨끗하게 빨아서 다려두고 내가 좋아하는 과자도 사두고. 옆집에 인사말도 챙겨두고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잘 도착했냐는 인사도 쉽지 않았다. 흔적만 남은 집안에 들어가 찬밥덩이처럼 앉아있을 남편을 생각하니 눈물부터 났다.

“핵산 검사 했어? 아팠겠다!!” 
“응, 깊게 쑤시더라.”

시시콜콜한 이야기만 어색하게 남기고 말을 잇지 못했고 그래도 보고 싶던 아버지와 동생을 실컷 느끼고 추억하고 있겠구나 하는 생각에 며칠은 안부도 묻지 않았다.

어쩌다 이런 세상에 살게 된 것일까.

사스도, 사드도, 황사도 잘 견디었던 우리의 중국생활 20년 중 지금처럼 힘든 시기도 없었다. 몇 달이면 괜찮아지겠지 했는데 벌써 3년이 지나고 있다. 언제까지 이어질지 감도 잡을 수 없고. 100년 전의 코로나 19로 불리는 페스트도 지금과 같았다고 하던데, 그때도 방역을 위해 학교 휴교와 상점 영업 금지, 집합 금지, 예배 중지 같은 비상조치들이 시행되었고 만연한 페스트가 삐져나오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로 도시를 봉쇄했다던데. 그리고 어느 날 거짓말처럼 사라졌다던 그 페스트처럼 우리의 상황도 그렇게 될 수 있을까. 

“그 시간에 잠시의 행복과 위안을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하게 이성적인 것은 사랑하는 사람과 희미한 어둠 속에서 서로를 안는 것”이라는 책 문구가 위로가 되는 시간이다. 

우리 집 금쪽이도 한국의 고향에서 위안을 얻고 사랑하는 두 사람을 따뜻하게 배웅하고 돌아오길. 
계절의 봄은 이미 꽃을 피우는데, 내게 봄 같은 당신은 언제 올까.

Betty(fish7173.blognaver.com)

전체의견 수 0

댓글 등록 폼

비밀로 하기

등록
  • [허스토리 in 상하이] 우리는 저마다 다른 이유로.. hot 2022.03.18
    코로나로 인해 2년이 넘도록 한국에 가지 못했다. 10년 남짓 중국 생활 동안 단 한 번의 향수병도 없었던 나조차 요즘은 언제쯤 한국에 갈 수 있을까, 목이 빠져..
  • [허스토리 in 상하이] 봄으로 가는 길목, 강변.. hot 2022.03.12
    지난 12월의 마지막 날, 두 아이와 함께 베이징발 비행기에 몸을 싣고 상하이로 향했다. 새로운 해를 이곳에서 시작하게 됨에 묘한 기대감마저 생겨 두 볼은 복숭앗..
  • [김쌤 교육칼럼] 제20대 대통령 선거를 지켜보며 hot 2022.03.11
    제20대 대통령 선거가 드디어 끝났다. 이번 선거만큼 막판까지 지지율이 엎치락뒤치락하며 예측이 어려웠던 선거가 있었나 싶다. 출구 조사 결과마저 방송사마다 오차범..
  • [독자투고] 매화 단상 hot 2022.03.11
    梅花 매화 -宋.王安石 [송]왕안석墙角数枝梅, 담 모퉁이에 매화 몇 가지,凌寒独自开。추위를 이겨내고 저 홀로 피었네遥知不是雪,멀리서도 눈이 아님을 알겠으..
  • [허스토리 in 상하이] 우리 이웃 hot 2022.03.04
    “딩동!”종종걸음으로 가서 문을 열었다. 옆 집 아기 엄마와 막둥이다. 양손 가득 들고 온 것을 얼른 내게 건넨다. 얼떨결에 받아 들면서 “셰셰!” 한다.이 곳으..

가장 많이 본 뉴스

종합

  1. [인물열전 2] 중국 최고의 문장 고..
  2. 中 외국계 은행 ‘감원바람’… BNP..
  3. 상하이, 일반·비일반 주택 기준 폐지..
  4. 마음만은 ‘국빈’, 江浙沪 국빈관 숙..
  5. 中 근무 시간 낮잠 잤다가 해고된 남..
  6. 텐센트, 3분기 영업이익 19% ↑
  7. JD닷컴, 3분기 실적 기대치 상회…..
  8. 바이두, 첫 AI 안경 발표…촬영,..
  9. 가을은 노란색 ‘은행나무’의 계절
  10. 불임치료 받은 20대 중국 여성, 아..

경제

  1. 中 외국계 은행 ‘감원바람’… BNP..
  2. 상하이, 일반·비일반 주택 기준 폐지..
  3. 텐센트, 3분기 영업이익 19% ↑
  4. JD닷컴, 3분기 실적 기대치 상회…..
  5. 바이두, 첫 AI 안경 발표…촬영,..
  6. 금값 3년만에 최대폭 하락… 中 금..
  7. 中 12000km 떨어진 곳에서 원격..
  8. 中 무비자 정책에 韩 여행객 몰린다
  9. 중국 전기차 폭발적 성장세, 연 생산..
  10. 中 올해 명품 매출 18~20% 줄어..

사회

  1. 中 근무 시간 낮잠 잤다가 해고된 남..
  2. 불임치료 받은 20대 중국 여성, 아..
  3. 上海 디즈니랜드, 12월 23일부터..

문화

  1. 찬바람이 불어오면, 따뜻한 상하이 가..
  2. [책읽는 상하이 259] 사건
  3. [책읽는 상하이 260] 앵무새 죽이..
  4. [신간안내] 상하이희망도서관 2024..
  5. [책읽는 상하이 258] 신상품“터지..

오피니언

  1. [인물열전 2] 중국 최고의 문장 고..
  2. [허스토리 in 상하이] 상하이 한인..
  3. [허스토리 in 상하이] 당신은 무엇..
  4. [무역협회] 미국의 對中 기술 제재가..
  5. [박물관 리터러시 ②] ‘고려’의 흔..
  6. 상해흥사단, 과거와 현재의 공존 '난..

프리미엄광고

ad

플러스업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