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좋은 인재가 국민의 선택을 받았을까
가족 경조사가 있어 한국에 다니러 왔더니 선거 운동이 한창이었다. 재외국민 부재자 등록은 해놓고 정작 투표를 못 하고 와서 귀국 투표 신고를 했다. 귀국 투표자는 사전 투표를 할 수 없어서 선거 당일 아침 일찍 투표하러 갔는데 그 시간에도 제법 사람이 많았다. 4년 전 코로나 시국에 마스크와 비닐장갑을 끼고 앞사람과 2미터 거리두기를 한 채 투표했던 기억이 새삼스럽다. 그렇게 뽑힌 국민의 대표들은 나라의 발전에 얼마나 이바지했을까? 그리고 이번 22대 총선에서는 얼마나 좋은 인재들이 국민의 선택을 받았을까?
몇 년 전, 역사 다큐멘터리를 좋아하고 아버지와 뉴스를 보며 토론하기를 좋아하던 K 군이 생각난다. 그 학생은 9학년 여름방학 때 플라톤의 <국가론>을 보며 역사에 대한 관심을 정치학으로 돌리게 되었다. 그는 좋은 인재가 리더로 뽑힐 수 있는 좋은 시스템을 만드는 정치학자가 되겠다는 꿈을 갖고 정치학과로 진학하였다. 그 학생은 이번 선거를 지켜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다수의 의견을 존중하되 소수의 의견을 무시하지 않는 균형, 그리고 국민이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이 나라를 이끌어가게 해야 한다는 그의 신념은 아직 빛을 잃지 않고 그 구체적인 해답을 향해 가고 있는 것일까?
세월호 뼈아픈 교훈으로 얼마나 배웠나
이제 곧 세월호 10주기다. 우리는 10년 전 그 참사를 통해 적어도 두 가지를 배웠다.
첫째, 누군가 당연히 구해줄 거라고 믿고 “가만히 있으라.”는 지시에 따랐던 그 아이들을 애통하게 보내며 “말 잘 듣게 하는 것”이 절대로 좋은 교육이 아니라는 것.
둘째, 인성교육은 시험지 모범 답안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정의를 바로 세우는 것에서 출발한다는 것.
사고 당시 콘트롤 타워의 부재를 문제 삼기보다 속옷바람으로 배와 학생들을 버리고 제일 먼저 도망친 선장을 두고 인성교육을 의무화하라고 목소리를 높인 어른들이 많았는데, 해방 후 역사의 정의를 바로 세우지 못하고, 고속 성장을 향해 물불 안 가리고 달려온 기성세대가 “착한 사람은 호구”로 여겨지는 사회를 만들어 놓고 그 속에서 자라는 아이들에게 어떻게 인성교육을 시킨다는 말인가? 사회 안전망에 대한 총체적 부실과 윤리의 부재는 아랑곳없이 성장만능주의에 빠져있던 우리의 모습은 최소한의 안전장치인 평형수를 빼버린 채 불법으로 증축하고 화물을 가득 실은 세월호의 모습과 너무나 닮아 있지 않은가? 우리는 10년 전 그 뼈아픈 교훈으로부터 얼마나 배우고 얼마나 변화하였는가?
존 듀이 “경험을 통해서 배운다”
근대 교육학의 아버지 존 듀이(1859~1952)는 교육의 주된 목적을 어린 세대로 하여금 그들이 장차 살게 될 미래의 삶 속에서 책임 있게 행동하고 성공할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 일이라고 하였다. (경험과 교육 1938) 듀이의 교육 방법은 한마디로 “경험을 통해서 배운다”는 것인데, 경험이란 유기체가 주변 환경과 만나 적응하고 조절하는 상호작용의 과정이다. 경험의 재구성을 통해 나를 변화시키는 것이 교육이고, 의사소통을 통해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 민주주의인 것이다.
따라서 듀이에게 있어 민주주의는 단지 다수결의 원칙을 따르는 체계가 아니라 시민들 사이에 의사소통과 협의를 이끌어내는 삶의 방식이다. 민주주의는 단순한 정치의 형태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근본적으로 공동생활의 형식이자 경험을 전달하고 공유하는 양식인 것이다. (민주주의와 교육 1916)
“경험을 반성하는 것으로부터 배운다”
지금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과 청소년들은 바로 다음 선거부터 유권자가 된다는 것을 잊지 말자. 존 듀이는 학교가 민주주의 실험실이 되어야 한다고 했지만, 일상의 경험 속에서 우리 아이들이 스스로가 주인의식을 갖고 민주적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법을 배우는 것은 가정에서부터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아이들의 이야기에 좀 더 귀 기울이고 서로 존중하며 대화하는 시간이 꼭 필요하다.
“우리는 경험으로부터 배우지 않습니다. 우리는 경험을 반성하는 것으로부터 배웁니다.
-존 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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