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서점가에 한류(韓流) 이미지를 파는 해적판이 판치고 있다.
중국에서 가짜로 지어낸 익명의 한국 작가를 내세워 한국 작품으로 팔리고 있는 위조작, ‘후아이샤오쯔(나쁜놈)’‘ 나거번단난성(바보같은 녀석)’.
감각적인 한국 청춘소설이 확실한 '흥행카드'로 떠오르면서 중국의 방대한 해적판·위조작 시장이 요동치고 있는 것. 단순히 지적재산권을 침해하는 영화나 드라마의 해적판과 달리 책은 중국에서 제작한 뒤 한국물로 포장해 팔고 있어 상황이 더욱 심각하다. 한류 이미지가 중국 저질 문화상품의 소용돌이 속에서 추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위조작 '천국'=중국의 석간 양쯔완바오(揚子晩報)는 16일 한국의 인터넷 소설 '그놈은 멋있었다''늑대의 유혹'의 인기를 업고 제목만 바꾼 아류·위조작이 20여종에 달한다고 보도했다. '그놈은 멋있었다8' '그놈은 쿨했다' '그녀는 예뻤다' '야옹이의 유혹' '여우의 유혹' 등 원작의 후속편으로 착각할 수 있는 제목들이다. 지난 15일부터 상하이에서 열리고 있는 '한국 도서전' 관계자는 "200쪽을 넘지 않는 위조 소설을 내면 채 한 달도 안돼 20만부 이상 팔린다"며 "적어도 120만위안(약 1억5600만원)은 거둬들일 것"이라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책 포장에 '한국'자(字)만 들어가도 팔리기 때문에 위조작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국을 팔아라"=위조된 서적들은 한국의 이미지를 팔고 있다. 대표적인 수법은 무늬만 한국인 책. 중국의 이름 없는 작가가 쓴 조악한 작품을 한국 작가의 작품으로 둔갑시키는 수법이다. 한국 작가의 이름은 가짜로 지어낸다. 두스콰이바오(都市快報)는 "이임근(李林根)·서형주(徐亨周)등 한국 인명을 쓴 위조작이 판치고 있다"고 보도했다. 한국 인터넷으로 검색해도 나오지 않는 이름의 작가들이라고 신문은 강조했다. 하지만 표지에는 '한국 인터넷 소설계의 양대 스타' '한국 소설 베스트셀러 10걸 작품' 등의 광고 문안이 쓰여있다. 이들 이름을 내건 번역 소설은 '이 남자 좀 터프해' '사랑하면 놓치지마' 등 8종이 팔리고 있다. 또 위조작을 만든 뒤 한국 유학생의 이름을 빌려 공동저작 형태로 책을 내는 방법도 최근 유행하는 수법이다. 모두 판권번호가 없다. 문제는 이런 책들이 판권 계약 없이 원작을 번역해 낸 단순 해적판에 비해 자체 생산이 가능하기 때문에 기하급수적으로 양산된다는 점이다. 마구잡이로 찍어낸 중국 위조작이 한국 책으로 둔갑해 팔리게 되면 한국·한류 이미지에는 적잖은 타격이 불가피하다. 위조작들은 저질 내용뿐 아니라 한국의 정서.문화와 동떨어진 자극적인 문구와 줄거리로 구성돼 있는 경우가 많다. 도서출판 황매의 정정란 대표는 "베이징 공항 서점에서조차 해적판.위조작이 버젓이 팔린다"며 "인세수입 감소 등 영업 손실뿐 아니라 장기적으로 한류 이미지가 훼손될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신화통신은 "지난달부터 중국 출판당국인 국가출판종서에서 조사팀을 구성, 이례적인 규모로 해적판·위조작의 실태를 조사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중국 출판계 이중고=시장이 해적판에 잠식당하는 것 외에 한국 관련 서적의 원가도 올랐다. 젊은층을 공략하는 첨병으로 한류 서적을 앞세워 왔던 중국 출판계로선 적잖은 경영 압박 요인이다.
신민완바오(新民晩報)에 따르면 중국에선 지난 몇년간 인기 한류 드라마 방영→관련 서적 출판이 공공연한 '대박 방정식'으로 자리잡으면서 '대장금' '파리의 연인' 등 한류 드라마 서적의 출판붐이 일었다. 이와 함께 인세.판권 가격도 뛰었다. 수입 초창기에는 인기작의 권당 판권도 700 ̄1400만원에 불과했으나 요즘은 5000만원 이상으로 뛰었다. 신문은 상하이인민출판사 편집자의 말을 인용, "2004년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이 책으로 나왔을 때 인세가 8%도 안됐으나 요즘은 상상하기 어려운 가격"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