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 살고 있는 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한국에서 가족 친지들의 방문을 경험하면서 그럴듯한 중국 음식점으로 한번 모시고 가야 할 것 같은 부담감 내지는 책임감을 느껴보았을 것이다. 도처에 중국 음식점이 많긴 하지만 막상 어디를 갈까 생각해보면 마땅히 갈만한 곳이 많지 않은 게 사실이다. 허름하지만 맛이 좋은 집이 있긴 한데 그러자니 체면이 안 서는 것 같고, 그렇다고 분위기 좋고 깔끔한 호텔로 가자니 안 그래도 비싼 가격에 세금까지 추가되면 가격이 부담스럽게 마련이다. 게다가 그림도 없는 메뉴판을 보며 주문하기는 또 왜이리 복잡하고 어려운지. 그래서일까. 중국에 살면서도 중국 음식점에 가서 제대로 먹어본 기억이 별로 없는 이가 의외로 많은게 사실인 것 같다.
이번에 다녀온 초강남(俏江南)은 호텔보다는 착한 가격으로 '분위기'와 '맛'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는 음식점이라 생각되는 그런 곳이었다. 더군다나 남녀노소 누구나 좋아하는 사천요리 집이니 금상첨화! 지금까지 마땅한 중국 음식점을 만나보지 못했다면 초강남(俏江南)을 기억해 두시라. (잠깐, 여기서 알아두실 것 하나. 식당 이름인 '초강남(俏江南)'의 '강남'은 중국의 양쯔강 이남지역을 이르는 말로 '강남엄마 따라잡기'의 '강남'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거)
가로수가 우거지고 나즈막한 건물들이 옛 정취를 느끼게 해주는 헝산루 길을 지나다 보면 대나무 숲에 둘러싸인 유리집 '초강남(俏江南)'이 우리를 기다린다. 도시 한가운데서 대나무 숲을 만난 반가움에 붉은 경극 가면으로 꾸며진 유리문을 열고 들어서면 양 옆으로 물길이 흐르고, 아로마 향기가 은은하게 퍼진다. 그 길이 끝나는 곳에 서면 커다란 거울이 길을 막고 있다. 입구가 여기가 아닌가? 하고 잠시 멈칫!하게 되지만 바로 거기가 들어가는 곳.
상치 않은 느낌의 입구를 지나 들어온 실내는 투명한 에메랄드빛 유리를 기본으로 한 모던하고 깔끔한 분위기로 꾸며져 있다. 조용히 담소를 나누는 손님들의 모습, 통 유리로 속이 훤히 다 들여다보이는 주방, 게다가 그릇을 세팅하고 있는 종업원 양손에는 놀랍게도 하얀 면장갑이! 여느 중국 음식점과는 좀 다르다는 인상을 받으며 자리에 앉는다. 메뉴를 펼쳐보니, 다양한 음식들이 사진과 함께 잘 나와 있고, 주문을 하며 어떤 종류의 음식인지 어떤 맛인지에 대한 우리들의 질문에 대답해주는 종업원의 친절한 태도에 기분이 좋아진다. 분위기도 좋고 친절한데 과연 맛은 어떨까?
1. 精美十三色攒盒 냉채 모듬 Elegang Cold Dish Combination (168 RMB)13가지 종류의 음식이 삼각의 접시에 퍼즐처럼 오밀조밀하게 커다란 찬합에 담겨져 나오는 데 콩, 호박, 연근 등의 야채류 뿐 아니라, 장어, 돼지갈비, 닭 발, 닭고기볶음 등 다양한 재료가 잘 조합되어 있어 마치 종합선물세트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사천의 특징적인 냉채 요리를 골고루 맛보고 싶을 때 주문하면 좋을 듯 하다. 단, 양이 많은 편이므로 최소한 4명 이상 갔을 때 시키는 것이 좋을 것 같다.
2. 锅巴海三鲜 해물누룽지탕 (58 RMB) 새우, 해삼, 가리비 등의 해물이 들어간 소스를 바삭한 누룽지에 즉석에서 부어준다. 누룽지는 고소하고 두께도 적당한 편인데, 소스는 우리가 흔히 먹었던 구수한 느낌보다는 탕수소스 같은 느낌의 새콤한 신맛이 강한 편이다.
3. 锅巴海三鲜 해물누룽지탕 (58 RMB)
毛는 소의 내장 중에서도 밥통 즉 양을 의미하지만, 이 외에도 해삼, 천엽, 간, 새우, 실장어, 숙주나물, 돼지 고기, 당면 등의 다양한 재료들이 고추기름, 산초 등을 재료로 만든 탕 속에 한 가득 푸짐하게 들어있다.
마치 미니 훠궈를 먹는 듯한 느낌. 메뉴의 사진을 보고는 양이 별로 많지 않을 거라 생각하고 주문했는데, 제법 큰 유리 냄비에 담겨져 나오고 양도 꽤 많은 편이다.
4. 俏江南石烹嫩豆花 즉석연두부 (58 RMB) 콩물을 붓고 간수를 넣어 즉석에서 연두부를 만드는 모습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정말 두부가 만들어질까? 궁금해하며 기다리는 동안 유리 그릇 안의 하얀 콩물은 보들보들한 연두부로 변신. 색도 맛도 다양한 6가지의 소스 가운데 원하는 것을 몇 가지 말하면 두부에 살짝 얹어주는데 골고루 비벼서 먹으면 된다. 소스에 대한 설명을 부탁하면 각 소스의 맛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는데, 우리에겐 그리 익숙한 맛은 아닌 듯. 혹시라도 입에 잘 안 맞는다면 소스 가운데 간장소스를 첨가하여 비벼 먹어보자.
5. 大明虾 왕새우 (1마리 48 RMB)왕새우 찜. 4가지 종류의 소스를 선택할 수 있는데, 고추(泡椒 Pickled Chili), 궁바오(宫保 Kung Bao) 소스가 우리 입맛에 잘 맞는 것 같다. 접시 하나에 한 마리씩 장식되어 얌전히 담겨져 나온다.
6. 担担面 딴딴미엔 (6 RMB)매운 양념을 넣어 먹는 사천 국수로 작은 그릇에 나온다. 担担面(딴딴미엔 Dan Dan Mian)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옛날 멜대에 매고 다니며 팔았던 음식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7. 雨花石汤圆 탕위엔 (6 RMB)
汤圆(탕위엔 Tang Yuan)이라는 음식은 찹쌀 등에 소를 넣고 만든 새알심류의 음식으로, 안에 검은깨와 초콜렛이 곁들여져 있다. 1인분을 시키면 3개가 나오는데, 부드럽게 녹는 맛이다. 모양은 꼭 작은 조약돌같이 생겼다.
8. 小草饭 (5 RMB)자그마한 소쿠리에 밥이 나오는데 그 모양이 귀엽고 앙증맞다.
보기 좋은 음식이 맛도 좋다고 했던가. 과연 우리가 기대했던 대로 음식 맛도 좋았고, 깔끔하고 시각적인 미를 고려하여 공들여 만들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모양이 특이하면서 다른 곳에서는 맛볼 수 없는 요리들도 많이 있으니, 메뉴의 그림을 잘 보고 선택하여 주문해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물론 우리에게 많이 알려진 위상로우스, 탕수육 등의 요리도 있다.
또한 사천요리라고는 하지만, 눈물 나게 매운 요리가 아니라 누구나 부담 없이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5 RMB부터 시작하여 고급요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가격대의 음식이 골고루 있어서 선택의 폭이 넓다는 것도 이 집의 큰 매력이라고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