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책에서 읽었던 얘기가 생각난다. 결혼을 하고서 오랜만에 친정에 간 글쓴이가, 이전에 자신이 사용했던 방에서, 이젠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 아이들과 함께 잠들게 되었다. 조금 뒤, 방문 밖에서 노부부(부모님)의 대화가 들려왔다. “방이 추울지 모르니, 애 가 이불을 잘 덮고 자는지 들어가서 한번 확인해 봐야겠소...” 그러시곤 아버지가 들어오셨단다. ‘아! 손주 생각하시는, 사랑하시는 마음이 정말 크시구나...’ 생각하며 두 눈을 꼭 감고서 잠든척하고 있었단다. 그런데, 아버지 당신께선 손주들 곁으로 가시기는 커녕, 바로 이 글쓴이의 침대 곁으로 오시더니, 이불을 당겨 잘 여며주시며, “이젠 됐구려...” 하시더니 손주들은 거들떠도 안 보시곤 문을 닫고 살며시 나가시더라는 것. 순간, 이 글쓴이는 가슴 뭉클했었다 했다. 아버지 어머니께는 아직도, 다 커서 어른이 되어있는, 이제는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있는 자신을, 당신들의 소중한 애 로 사랑의 손길을 보내고 싶어 하셨던 것.
결혼을 하고서, 자신의 가정을 갖게 되면서, 부모님보다는 자신의 자녀들이 더 소중하였기에, 그들에게 모든 에너지와 사랑을 쏟아 붓느라, 그 동안 부모님이 자신을 그리워하며, 사랑하며 기다리고 계셨음을 깨달은 순간, 자신의 무심함을 한없이 자책하며 죄송했었다 한다.
근래에 들어, 아버지가 자꾸 내게, 자식들만 바라보고 사는 거 아니냐고, 나중에 너 인생에 남을 것은 뭐냐고 ‘잘 생각해보라’고 채근하신다. 그렇다고 내가 아이들에게 엄청 희생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근데 아버지 당신이 보시기엔 경제적, 정신적으로 애들 키우는 데만 온통 신경을 쓰고 있는 것처럼만 보이시는지, 자꾸 나 스스로의 독자적인 삶의 모습을 준비하라 하신다.
나중에 ‘낙동강 오리알’ 되지 말라시며.... 자식들한테 적당~히 하고, 나의 미래의, 노후의 삶의 설계도에 대해 고민하라신다. 손주들이 예쁘고 사랑스럽긴 하지만, 자신의 딸인 내가 더 걱정이 되신단다. 대부분의 우리들이 그러하듯, ‘내리사랑’이라고, 아버지 당신 자신도 젊었을 땐, 우리들을 위해서 살아오셨으면서도...
물론, 나도 건강을 위해 매일 열심히 운동을 하고 있다고 답하고 있다. 이것이 나의 미래를 위한 큰 재산의 일부는 될 거라고 생각하면서. 근데, 아버진 이것으론 부족하단다. 건강과 함께 뭔가 사회의 일원으로서 소속감을 느끼며 살아갈 준비를 하라는 것이다. 나중에 홀로 남겨질 때의 지독한 외로움을 어떡할거냐고.... 또한 아이들한테 올~ 인 하다가 경제적인 어려움이라도 닥치면, 또, 그 때는 어찌할 것인지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방법을 강구하라고 재촉하신다. 예고되지 않는 재앙이 자식들 앞에 닥칠까 봐 걱정되신단다.
‘알았어요, 알아들었어요.’ 이 대답에 아버진 건성으로 대답하지 말라고, 진지하게 고민하라고, 또 충고하신다. 객지에 나가있는 자식들이, 운전을 해서 걱정, 출장을 자주 다녀서 또 걱정, 모두가 다 걱정된다고... 사고 소식만 들려도 가슴이 철렁하신다고, 전화기에 손이 간다고.
사실, 애들이 조금씩 커가면서, 시간의 여유가 생기고 있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있는 동안만큼은 완전히 내 세상이 된다. 이러한 시간의 여유가 나중엔 정말 지독한 외로움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아버지의 충고를 맘속에 담고 새로운 고민을 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다음엔 건성이 아닌, 진심으로 대화할 수 있도록 노력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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