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귀의 건축 이야기]
상하이 건축의 편견
편견은 왜 생기는 것일까?
물론 여러 가지 사회적 요인이 있겠지만, 그 근본적인 바탕에는 어떤 현상들에 대해 반드시‘설명’을 해야만 하고, 또 그것을 필요로 하는 인간의 ‘방어적인 욕구’ 때문일 것이다. 사실 우리는 자신에 대해서도 제대로 설명하지도 못하는 빈약한 이성의 존재들이다.
그래서 으레 어떤 특정한 대상 혹은 소속된 집단을 통해 나를 바라보거나 조율해나가기 마련인데, 그 과정에서 생겨나는 일종의 집단의식이 인간의 편견들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편견은 대상을 이해하려는 이성적 활동이 아니라 집단으로부터 개인의 나를 보호하려는 방어적 수단에 더욱 가깝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편견의 결론의 시점이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때때로 그 쓰임새가 확연히 달라질 수 있다.
즉, 미리 결론 내린 편견은 단순한 아집만이 될 공산이 크지만, 결론이 유보된 편견은 사물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좋은 화두가 될 수도 있다. 이를테면, 흔히 ‘상하이가 중국적이지 않다’라는 편견의 결론을 유보한 채로 상하이 건축을 바라본다면, 상하이 건축들의 정체성을 그나마 제대로 알 수도 있다.
아마도 중국 전통건축의 흔적이 드물어 상하이 건축을 중국적이지 않다고 이야기하는 것일 게다. 맞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그런 편견들이 상하이를 보다 중국적으로 생산하는 에너지가 되기도 한다.
사실 상대방의 일방적인 편견 혹은 부정적인 편견에 대해서는 그것을 탈피하거나 개선하고자 하는 내적인 욕구를 불러일으키기 마련이다.
실제로 얼마 전, 상하이 사회과학원에서 상하이인들을 상대로 상하이인들이 가지고 있는 편견에 대해 조사를 하였는데, 돈만 알고 시사에 어둡다는 편견, 손님을 잘 초대하지 않는다는 편견, 등 에 대해서 실제 생활에서의 그 통계 수치를 조사 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결과가 의외로 밝혀졌다고 한다.
손님을 초대하는 빈도수도, 신문을 구독하는 구독자수도, 외지인에 비해 훨씬 많게 집계됐으며, 상하이 태생 시민 80%가 그 편견에 반감을 나타낸다고 하니, 결국 그런 편견들이 현재를 개선 하는 에너지를 생산 하고 있는 형국이다.
이처럼 상하이 건축의 조형의지에 있어서도 그 모티브를 지나칠 정도로 굳이 중국적인 것으로부터 시작하려는 움직임도 그런 의미의 하나 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세계의 어떤 다른 현대 도시들보다 창의적인 건축이 눈에 많이 뜨인다. 아마도 이것이 비록 직접적으로는 중국적이지 않을지라도 앞으로 독창적인 상하이 양식을 만들어내는 데에 큰 일조를 할게 틀림없을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중국적이지 않다라는 편견이 있는 한, 상하이는 중국적이기 위한 노력을 결코 게을리 하지는 않을 것이다. 편견을 잘 쓰는 법. 필자는 여기 상하이의 마천루들을 바라보며 우리가 살아가는 시간의 단면을 같이 보기도 한다. 나는 과연 지금 어떤 편견으로부터 자유롭고 싶어하는지 넌지시 나 자신에게 스스로 물어 봄직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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