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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탁칼럼]대한민국 국민, 종이 바뀌었나?

[2010-02-25, 11:30:08] 상하이저널
하면 된다

2010년 밴쿠버 동계 올림픽이 한창이다. 동계 올림픽하면 쇼트트랙에서 금메달 몇 개 따내는 것에 만족하며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던 사람들까지도 근무시간을 할애해가며 TV중계를 시청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정수가 쇼트트랙에서 금메달을 따낼 때까지만 하더라도 역시나 예전의 경우처럼 동계 스포츠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만 의미가 있을 수 있는 컬트적 성격의 축제였으나, 모태범이 동계올림픽의 육상 종목이랄 수 있는 스피드스케이팅 500m에서 아시아인 최초로 금메달을 따 내면서 모든 상황이 변해 버렸다.

초등학교를 다닐 때 학교 정문에 크게 새겨 놓은 글씨를 나는 아직도 선명히 기억한다. 바로 ‘하면 된다’ 였다. 어린 마음에 무엇을 하면 된다는 것인지 이해를 잘 하지 못했던 것 같다. 막연히, ‘당연히 하면 되겠지 해서 안될 게 무엇이 있나, 왜 저렇게 당연한 것을 표어로 만들어 저렇게 크게 붙여 놓았나’ 라는 생각이 들었던 기억이 있다.

나중에 조금 더 크고 나서야 그 원인을 알게 되었다.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일본인들로부터 ‘조센진은 안돼’ ‘엽전은 별 수 없어’ ‘ 조선놈은 맞아야 정신이 들어’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나 가지 왜 나서’ ‘모난 돌이 정맞는다’ ‘너흰 해도 안돼’ ‘모든 게 팔자 소관이야’ 등등……. 스스로를 비하하는 자기 부정, 자기 불신의 집단암시가 한 세대 이상 지속되면서 무기력, 무능력이 집단 학습되어 있는 상황에서 조국 근대화라는 목표아래 정권을 잡은 박정희 정부가 무엇을 해보려고 해도 국민들의 위와 같은 의식 때문에 아무 일도 추진할 수가 없었던 것을 깨닫고는 정신부터 바꿔야 조국근대화가 이뤄질 수 있겠다는 생각에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자라나는 세대가 어른이 되었을 때는 그런 생각이 없어지게끔 하기 위해서 모든 학교 정문에 가장 잘 보이는 곳에 ‘하면 된다’는 붙여 놓았던 것이라고 한다. 광복 당시 대한민국의 문맹률이 90%를 넘었던 것을 생각해 보면 ‘하면 된다’라는 표어가 얼마나 당시에는 공허하게 들렸을지 짐작이 간다.

모태범의 500미터 스피드스케이팅 금메달에 이어 동갑내기 이상화도 500미터 스피드스케이팅에서 금메달을 따냈다. 세계 스피트 스케이팅 역사상 500미터 종목에서 한나라 선수가 남녀 금메달을 딴 것은 처음이라고 한다. 20세기가 끝날 무렵만 하더라도, 스피드스케이팅에서 한국 선수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딸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면 된다. 정말 된다.’
‘He can, she can, why not me?’

안되면 되게 하라

이승훈이라는 선수가 있다. 작년까지만 해도 쇼트트랙 선수였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안현수, 이호석 등 기라성 같은 스타들의 벽에 막혀 올림픽은 고사하고 대표팀에 발탁되기도 힘든 선수였다. IMF 이후 아버지의 사업부도로 운동을 그만두어야 하는 상황에도 몰렸었다고 한다. 지금도 잔병처럼 집안전체가 가난을 달고 산다고 한다.

작년에 올림픽 출전 선수 선발권에서 탈락한 후 많이 힘들어 했다고 한다. 여기서 모든 것을 포기할까, 왜 어린 나이의 선수가 생각이 없었겠는가. 아이가 마음이 다칠까 안타까워 부모님들은 말도 제대로 붙이지 못했었다고 한다.

 그런데, 며칠 고민하던 아이가 스피드스케이팅 국내 올림픽 출전 선수 선발권에라도 참여를 하겠다고 하더란다. 말리지도 못하고, 하라고 하지도 못하고, 그 상황을 지켜보던 부모의 안타까운 마음은 안 봐도 짐작이 간다. 우여곡절 끝에 스피드스케이팅 장거리 선수로 뽑히게 된다. 쇼트트랙에서 메달을 따는 것도 어려운데, 쇼트트랙에서 후보도 못 되는 선수가 메인 종목인 스피드스케이팅에 도전을 한다고 했을 때 주변의 시선이 어떠했겠는가. 출전수당이라도 챙기려 한다. 무슨 종목이든 국가대표 선수가 되어야 밥벌이라도 할 수 있다. 등등 온갖 조롱섞인 소문의 주인공으로 7개월을 살아야만 했던 이승훈 선수가 오기가 발동했는지, 아니면 그 조롱을 땔감으로 삼아 스스로를 발전시키는 에너지로 만들었는지, 드디어 사고를 쳤다.

이번 올림픽 5,000미터 스피드스케이팅에서 은메달을 따더니, 최장거리인 10,000미터 스피드스케이팅에서 드디어 올림픽 신기록을 세우며 금메달을 딴 것이다. 정말 감동적인 인간 드라마가 아닐 수 없다. 혹자는 운이 좋아서 금메달을 땄다고 한다. 그러나, 작은 성공이라도 거둬본 사람들은 안다. 그런 운도 실력이라고. 운이 좋지 않았던 그 해당 선수는 예전에도 비슷한 실수로 메달을 놓쳤었다고 한다. 이 글을 읽을 지도 모를 학생들에게 거듭 말하고 싶은 게 있다. 운도 실력이다. 실력이 있는 자에게 운이 따르는 것이지 실력없는 자에게는 운도 따라 오지 않는다. 이승훈이 10,000미터 스피드스케이팅에서 금메달을 따 내면서, 우리나라는 최단거리와 최장거리에서 세계 최강자가 되었다. 자랑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내가 어렸을 때, TV를 틀면 거의 매일 나오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나이가 좀 드신 분들은 기억하실텐데, 바로 ‘배달의 기수’다. 우리 국군에 대한 홍보성 영화, 다큐멘타리, 드라마를 짬봉해 놓은 듯한 프로그램이었다. 그 프로그램에서 가장 자주 나오는 말이, ‘안되면 되게 하라’였다. “하면 된다”=> “안되면 되게 하라” : 재미있지 아니한가?
“포기는 배추를 셀 때나 쓰는 말이고, 실패는 실을 감을 때나 필요한 거야. 시련은 있어도 포기나 실패는 없어, 결코 포기하지마” “해 보기나 했어? 왜 해 보지도 않고 안된다고 해?”(고 정주영 회장의 연설 중에서)

선수단의 선전을 기대한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까지는 김연아 선수가 피겨스케이팅 쇼트 프로그램에서 세계 신기록으로 1위를 달리고 있어 금요일 프리 프로그램에서 실수만 하지 않으면 한국 피겨스케이팅 역사상 최초로 금메달을 따는 주인공이 된다고 한다.

김문수 경기지사가 이런 말씀을 하셨다. 김연아가 군포 사람이라 자기가 사는 데를 가 봤다고 한다. 그 동네 스케이트장 하나 없더란다. 가르쳐 줄 코치도 제대로 없더란다. 스케이트를 좀 탈 줄 아는 엄마가 억척스럽게 연아를 어르고 달래며 훈련을 시켜서 세계 정상을 만든 것인데, 자기도 놀랬단다. 아니 한국 여자가 다리 드러내 놓고 아름다움, 섹시함을 스케이팅 기술에 담아서 세계로부터 인정받는다는 것을 우리 때의 사람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고. 그런 일들을 지금 젊은이들이 해내고 있다고.

AP 통신을 비롯한 세계적인 언론들은 ‘김연아가 진짜 본드걸처럼 경쟁자들을 쓰러뜨렸다’고 전하며 당일 나온 금메달이 5개나 되지만 단연 뉴스의 주인공은 김연아였다고 전했다. 김연아 선수가 남은 프로그램도 연습한 만큼 잘 해내서 꼭 금메달을 따 내길 기원해 본다. 김연아 선수마저 금메달을 따낸다면, 세계인들에게 한국은 이 세상에서 가장 빠른 나라, 가장 아름다운 나라로 기억될지 모르겠다. 다른 선수들도 자신의 종목에서 최선을 다해 좋은 성과를 거둬줬으면 좋겠다.

종이 바뀌었나?

이번에 동계 올림픽 TV중계를 지켜보던 나이 드신 분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 ‘우리 국민의 종이 바뀐 것 같다’고. 그도 그럴 것이, 이제 더 이상 못 먹어서 신체적으로 서양 선수들과 차이가 나는 사람이 없다. 이승훈 선수를 비롯한 우리 선수들의 키와 허벅지와 다리를 보라. 신체적인 것만 바뀐 게 아닌다.

모태범은 금메달을 따고 춤을 추었다. 80,90년대 같았으면 상상도 못할 일이다. 1,000미터에서 은메달을 따고도 얼굴에 즐거움이 넘쳐난다. 은메달 땄다고 미안해서 태극기 올라갈 때 고개도 들지 못하던 20세기 한국인과는 많이 다르다. 김연아가 연기하는 표정을 보라. 우리네 전통 여인들의 표정이 그 속에 어디 하나라도 있는가. 서양 선수들보다 더 우아하고 더 섹시하지 않은가. 007 제임스본드가 본다 할지라도 금새 홀리지 않겠는가.

먹고 사는 문제인 생존의 단계를 지나, 대한민국의 국운이 본격적으로 상승하기 시작한 88올림픽 이후 출생한 풍요 세대들의, 세계적인 수준의 신체조건과 거침없는 정신자세, 이제 바야흐로 대한민국은 그들의 것이리라. 자랑스런 나의 조국 대한민국 파이팅~!!! 대한민국 만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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