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편찮으셔서 병원에 입원을 해야 할 것 같아 서둘러 친정에 가게 되었다. 아직 어린 막내가 맘에 걸리긴 했지만, 방학이라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기도 하고, 또 한편으론 이젠 초등 고학년인지라 스스로 잘 해 낼 수 있는 부분 또한 많으리라 스스로 위안하며…. 홀로서기를 하고 계시는 아버지가 늘 마음 한구석에 아픔으로 남아 있던 터라, 두 번 생각 할 것도 없이 연락을 받자마자 뒤도 안돌아보고 공항으로 향했다. 큰아이의 ‘어쩔 수 없지’라는 무언의 반응도 뒤로 한 채로.
입원한 날짜가 하루 이틀 길어짐에 따라, 아버지 친구 분들이 병원을 다녀가기 시작했다. 한 시절, 이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열심히들 사시던 분들이 친구의 아픔을 위로하러, 외로움을 덜어주려 열심히 드나들고 있었다. 날이면 날마다 같은 자리에 주차해있던 차가 안보여 ‘어디 여행이라도 갔나?’ 생각했었는데, 아파서 병원에 있다는 소식에 놀라 서둘러 오신 분, 아버지 사무실에 우연히 들렀는데 병원에 있다 하여 발길을 병실로 돌리셨다는 분, 오랜만에 점심이라도 같이 할까하여 전화하셨다가 병원소식에 놀라 총총히 오신 분 등등….
아버진 홀로서기를 잘하고 계셨던 걸까? 멀리 있는 자식들보다 가까이에 있는 친구들이 훨씬 더 큰 위안이 되고 있는 게 분명해 보였다. 병색에 때론 지쳐 보이기도 하고, 때론 힘겨워 보이기도 했지만, 오랜 친구들이 곁에, 가까운 곳에 있어, 참으로 다행이다 싶었다.
한 절친한 친구 분이 거의 매일 병원에 들르셨다. 나도 오래도록 이전부터 아주 잘 알고 지내던 분처럼 정겹기 시작했고, 그 분도 당신의 따님과 참 많이도 닮았다며 날 이뻐해 주셨다. 나이 사십을 넘긴지도 오래되었건만, 그분껜 아직도 어여쁘기만 한 딸인양.
“혹여 최근에 스트레스 받은 일이 있었나?” 대뜸 물으셨다. 정신적인 스트레스, “사랑하고, 감사하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용서하라!”는 말씀을 하신다. 스트레스가 만병의 근원이라고 하시면서 무슨 일이 있었는진 모르겠지만 “주위의 사람들을 사랑으로 대하고,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잃지 말고 그리고 반드시 용서하도록 애쓰라”하신다. 이 말씀에 아버지와 나, 우리 두 사람, 자연스레 고개를 끄떡이며 잠깐 숙연해졌다.
사실상, 우린 많은 충고와 진리의 말들을 배워오고 있고, 실제로 접하면서 살고 있다. 하지만, 강의를 들을 그때 뿐이고, 책을 읽을 그때 뿐인 것을…. 정작 일상의 삶 속에선 우리의 뇌는 온통 미움과 욕심, 그리고 분노로 우리의 마음을 제 멋대로 흔들어대도록 내버려두고 있을 뿐인 것을….
문득, 병원 내, 24시 편의점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던 여학생이 떠오른다. 스킨로션하나 준비해 가지 못한 나에게 선뜻, 한 치의 망설임없이 자신의 것을 꺼내주며 “쓰실만큼 쓰시고 돌려주시면 되요”하던 상냥했던 그 여학생! 내겐 평생 잊지 못할 또 하나의 사랑을 전해주었다.
퇴원하시던 날, 양손 가득히 무거운 가방을 들고 가는 내게, “하루를 좋은 일 하나 하면서 시작하고 싶다”며, 선뜻 무거운 짐을 들어주시던 아저씨! 그 분은 어머니가 3년째 노인요양원에 계신다 했다.
이번에, 병원에서 내게 참사랑을 느끼게 해준 사람들에게, 정말 감사하고 싶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 만큼은 정말 내 가슴도 그네들의 사랑으로 따뜻하다.
▷아침햇살(sha_bead@hanmail.net)
ⓒ 상하이저널(http://www.shanghaibang.net),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