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날씨가 많이 누그러졌지만, 한동안 너무 더워서 집 밖으로는 한 발자국도 내밀기 싫을 때가 있었다. 일단 집에 들어가면 다음날 회사에 갈 때까지는 집에 붙어있는 생활이 익숙했었다. 몇 번은 운동을 한다고 집 앞을 나가보긴 했지만 룸메이트들도 나도 금새 더위에 푹 절은 배추마냥 시들시들 해져서 소파나 침대에 늘어져버렸다. 중국에 온 지 이제 며칠. 적응할 수 있을까? 의문이 서서히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인가 나보다도 더 중국이란 나라에 낯설어 하고, 인턴 생활에 지쳐 일찍 잠자리에 들곤 하던 룸메이트 2명이 저녁을 먹고 나면 꼭 1층으로 내려갔다. 게스트 하우스에서 묵고 있는지라, 1층에는 카운터의 직원들뿐일 텐데, 둘은 한 번 내려가면 한 두 시간은 꼭꼭 채우고 올라왔다.
“언니, 밑에서 일하는 애 이름이 메이링(美铃)이래. 나랑 동갑이야.”
“생수통 갔다 준 그 동글동글한 아저씨, 다음달에 고향으로 간다는데.”
“여기랑 여기 둘은 부부라더라. 깜짝 놀랐잖아. 전혀 티 안내.”
“링쯔(铃着)는 힘들어서 그만 뒀어. 일 한지 얼마 안됐다던데.”
“언니, 카운터 사람들 24시간 일하고, 24시간 쉬고 이러는 거 알아?”
밑에서 듣고 온 얘기들을 조잘조잘 내 앞에 풀어놓았다. 회사에서 늦게 돌아오는 날이면, 카운터에 앉아서 얘기를 나누고 있는 둘을 볼 수 있었다. 한 손에는 전자사전을 들고, 한 손에는 종이와 펜을 들고, 뜻이 안 통하면 그림을 그려서라도 끊어질 듯 끊어질 듯 한 대화들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거창한 무언가가 아니라 소소한 이야기들. 그들이나 나나 중국어를 못하는 건 매한가지일 텐데, 웃고 즐기는 모습이 보기 좋아서, 나도 몇 번 끼어들어 보기도 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8월 중순쯤 되었을 때, “언니, 우리 메이링이랑 치바오에 놀러 간다”라며, 한껏 들떠 안내책자를 찾아보는 둘을 볼 수 있었다. 처음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얼굴이 밝아 보였다. 그 둘은 다른 사람들 같으면 그냥 지나쳤을 관계를 마음을 줄 수 있는 친구로 바꾼 것이다. 중국에 있는 동안 ‘사람을 사귀는 것’에 경계를 가졌던 내 모습이 부끄러울 만큼. 친구는 먼 곳에서 찾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나보다도 나이 어린 그 친구들에게서 느낄 수 있었던 순간이었다.
▷이수현(silver_scotish@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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