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동안 잘 지냈니? 중학교생활 힘들겠다. 매일 10시에 학원에서 돌아온다면서? 그런 것 생각하면 내가 중국에 사는 것이 좋기도 하고, 살다 보면 한국에서 살고 싶기도 하고, 근데 너도 중학교에서 적응하기 힘들었어? 난 중국학교에서 힘든걸 글로 쓰자면 장편소설이 되겠다. 먼저 말이 제일로 중요했지, 선생님이랑 친구들은 뭐라뭐라 하는데 한마디도 못 알아 듣고, 그리고 1년 동안 판판이 놀았지.
선생님이 숙제하라고 하시지도 않고, 수학만 했어. 영어선생님도 숙제하라고 하지 않았어. 그래서 그 동안 내가 약간 공부가 늦어졌어. 원래는 몇 년을 낮춰서 입학했어야 했는데 내가 필사적으로 반대해서 엄마도 그렇게는 하지 않으셨어. 지금은 괜찮아. 중국국어 문제도 웬만한 건 풀고, 거의 보통 애들이랑 비슷비슷하게 하지.
그런데 나도 지금은 웬지 뭔가가 허전해, 마구마구 한국어로 떠들고 한국 애들이랑 만나고 한국에서 자유롭게 공부하고 싶은 마음뿐이야, 한국에서 너희들과 같이 공부로 경쟁도 하고 싶고, 이러다가 완전히 한국문화에는 뒤떨어지는 게 아닌지 몰라. 너희들은 내가 부럽겠지, 중국에서 살고 중국말도 하고, 그런데 너희들은 몰라, 조국에서 떠나서 모국어로 자유롭게 떠들지 못한다는 게 가끔씩 학교에서 한국어로 말을 하고 싶으면 6학년 2반에 있는 한국친구들을 찾아가, 그것도 어쩌다가 한번 만날 뿐이야, 이럴 땐 꼭 안네프랑크 같아. 자유롭게 떠들고 자유롭게 웃고 싶다고 했었어, 은둔생활 동안 말이야. 그런데 난 은둔생활도 아닌데 웃음을 잃어버린 지 오래야. 한국방송을 보고 코미디를 보고 웃고 싶어.
그리고 중국 애들도 몇몇은 왜 이렇게 치사하고 구두쇠인지, 지우개도 못빌리고, 뭐 몇몇일 뿐이지만, 한국에서는 필통을 안갖고 와도 친구들한테 빌릴 수가 있어서 좋잖아 하지만 여긴 필통을 안갖고 오면 엄청난 큰일이야, 빌려봤자 몇 교시 동안 뿐이야, 아~ 난 그저 한국의 내 집에서 한국어로 떠들고, 한국의 내 집에서 살고, 한국의 학교에서 너희들과 공부하고 싶은 것뿐이야. 그럼 그 어떤 귀중한 물건이라도 남에기 줄 수가 있겠는데, 그 어떤 귀중한 물건이라도….
내가 너한테 부탁할게 하나 있어. 이제 고등학생쯤 되면 우린 만나기 어렵겠지. 친구들도 다 뿔뿔이 헤어질테고, 하지만 내가 방학 때 가더라도 공부 때문에 나를 외면하는 건 아니겠지. 사는 높이가 다르다고 우정의 높이까지 다르면 안된다고 했어, 우리의 우정은 영원히 간직하자.
2001년 3월 30일
너의 영원한 친구가 슬픈 마음을 싣고…
*당시 졸업생 전체성적 1위로 로컬중학교를 졸업한 이 학생은 중카오(中考)에 도전해 중국학생과 실력을 겨뤄 민항취에서 1명만 선발하는 복단부중에 입학했다. 현재 칭화대 컴퓨터학과 4학년에 재학 중이며 미국대학원 입학을 준비 중이다.
이 편지 보면서 우리아이가 그 나이에 얼마나 마음고생을 했나 생각을 하니 미안하고, 또 그런 것을 겪으면서 더 큰 아이로 성장할 수 있지 않았나 생각이 드니 대견한 생각까지 든다. 5학년 2학기 때 중국에 와서 5학년으로 바로 중국 학교로 편입하였으니 중국말이라고는 ‘谢谢’도 모르는 아이는 얼마나 황당하고 힘들었을까, 그래도 아무런 내색없이 잘 버텨준 아들놈이 고맙기까지 한다.
현재 많은 학생들이 상해에서 공부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 부모된 입장에서 아이들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혹은 공부외적으로 무슨 생각들을 하고 있는지, 우리가 좀더 아이들에게 신경 써줘야 하는 부분들을 놓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아들의 편지를 함께 나누고자 한다.
▷정영석(hansu-china@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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