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윤리학자이자 교육자인 차이위엔페이의 생가에 다녀왔다. 차이위엔페이는 중국의 신 교육 제도의 기출을 닦은 지식인으로서 교육이 나라를 구한다고 주장한 분이다.
그는 중화민국 성립 후, 초대 교육청장이 되어 근대 중국 학제의 기초를 세우고 베이징대학 학장을 역임하면서 5•4운동의 아버지라 불렸다. 여러 운동에 참여하여 혁명사상을 고취하던 그는 결국 청조의 탄압을 받아 일본으로 망명을 갔다. 내가 다녀온 이곳은 차이위엔페이가 생전 상하이에서 거주할 때 마지막으로 머무른 곳으로 1984년 상하이 인민정부에서 보호건물로 지정해 기념하고 있다.
차이위엔페이의 옛집을 가는 길목 입구 벽에는 그의 흉상과 업적이 부각되어 있고 골목 길을 따라 입구까지 생애 업적을 담은 사진자료들이 길게 게시되어 있었다.
입구에 들어서면 다시 단독주택 형태의 집들이 나오고, 몇 백 년이 되었다는 큰 나무 사이와 집들 사이에 차이위엔페이가 살았던 곳이 있다. 그의 집은 여러 개의 방들이 굽이굽이 있었는데 안으로 들어가 보면 맨 처음으로 차이위엔페이의 흉상과 함께 간단한 소개가 함께 있다. 이어서 그가 원래 태어나 자란 집이 모형으로 있는데 직접 쓴 일기와 함께 각 계 지식인들의 교육방침에 대한 의견이 담긴 글도 있었다. 또한 그가 살아생전 직접 쓰던 타자기, 화병, 찻잔 그리고 지갑까지 다양한 물건들 역시 멋스럽게 전시되어 있다.
이어서 네 번째 방에 들어가면 당시 활동했던 북경 대 교수들과 함께 찍은 사진 여러 장, 그리고 루쉰에게 준 임명장과 직접 디자인한 학교 배지가 있다. 루쉰은 차이위엔페이에 의해 베이징 대학 교수로 임용되었고 평생 차이위엔페이와 가깝게 지냈다. 루쉰이 죽자 차이위엔페이가 장례의 절차를 도맡아 처리했을 정도였다. 또한 마오쩌둥은 차이위엔페이가 교장으로 재직하던 시절, 베이징 대학에서 도서관 사서로 일했으며 그를 매우 존경하고 흠모했다고 한다.
이곳에 가면 차이위엔페이의 전생애를 사진자료나 그림, 사진을 통해 알 수 있다. 특히 유화로 그려진 그의 초상화는 시기에 따라 여러 장 그려져 각방마다 한 장씩은 걸려있어 생가에 멋스러움을 더한다.
참관하는 동안 내내 중국 사람들이 끊임없이 들어와 참관을 하는 모습이 놀라웠다. 참관하는 사람들의 행렬로 새삼 그의 생애의 무게를 짐작할 뿐이다.
차이위엔페이가 상하이에서 마지막으로 머물었던 이곳은 정안사에서 5분이면 갈 수 있을 정도의 거리로 구베이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면 지하철 1호선과 2호선을 이용 할 수 있다. 일주일중 월요일은 문을 열지 않고 9시부터 16시30분에 문을 닫는다. 주말에 차이위엔페이의 자취가 담겨있는 이곳에 다녀와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개관시간: 오전 9:00~11:30(11:00까지 입장가능), 오후 1:00~4:30(4:00까지 입장가능)
▶개관요일: 화~일요일
▶주소: 华山路303弄16号
▶문의: 6248-4996
▷고등부 학생기자 최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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